서평: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 박경미, 한티재 ─ 보수 개신교의 동성애 혐오와 성서 오독에 맞서는 유용한 무기

성지현 117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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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에 대한 보수 개신교의 비난과 극성스러운 반대 운동이 계속되는 와중에 한국 개신교 내부에서도 동성애를 변호하는 목소리가 출판돼 나오고 있다.

지난해 허호익 전 대전신학대 교수가 《동성애는 죄인가: 동성애에 대한 신학적·역사적 성찰》(동연)을 출간한 데 이어1, 올해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김근주 교수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 성경 주해와 해석: 동성 성행위 본문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NICS)와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신약성서학 박경미 교수의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 성서학자가 들려주는 기독교와 성소수자 이야기》(한티재)가 나왔다.

이전에도 관련 기독교 책들이 심심찮게 번역돼 나왔지만, 한국의 연륜 있는 신학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성소수자를 방어·지지하는 책을 내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국 개신교 내부에서도 동성애 혐오 입장에 대해 만만찮은 도전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1부 ‘성소수자에 대한 오해와 진실’과 2부 ‘성소수자와 성서’로 구성돼 있다. 이미 성소수자에 대한 어느 정도 지식이 있거나 관련 서적을 봤다면 책의 내용이 익숙할 수 있다.

이 책에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먼저, 위에서도 밝혔듯이 개신교 내부자가 직접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 성소수자를 유보 없이 지지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2015년 이화여대 신학대학원 원장 재직 당시에 반동성애 그룹의 공격에도 맞서 ‘성소수자와 성서’라는 수업을 지켜낸 경험을 계기로, 신학자로서 이런 행태를 바로잡아야 할 의무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저자는 현재 논란 중인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 동성 결혼 합법화,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 정정 간소화,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서도 다루며 분명한 지지 입장을 밝힌다.

이런 점이 많은 성소수자들, 특히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교회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기독교인 성소수자들에게 감동을 줄 것이다.

둘째, 저자가 보수 개신교의 반동성애 운동의 논리와 전개를 다룬 부분도 쉽고 재미있다.

반동성애 운동의 원인을 단지 성서에서 찾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운동이 왜 한국에서 2000년대 중반에 와서야 등장했는지, 같은 교리를 따르는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동성애에 대한 입장이 왜 다른지를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이는 한국 개신교의 위기2와 그에 대한 교회의 대처와 관련이 깊다.

저자에 따르면 해방 이후 남한 개신교의 중심은 반공주의를 핵심으로 한 월남자들이었다. 이들은 독재 정권들과 유착하며 급격히 성장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다섯 개 중 네 개가 한국에 있고, 이 교회 설립자들이 모두 북한 출신이다.”

그러나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반공 정권이 계속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이들은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저자는 독재 정부 시절에는 로마서 13장의 ‘정교분리’를 내세우며 진보적 기독교인의 사회 참여를 비난하던 극우 개신교가 이제는 직접 거리로 나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모습이 낯설다고 말한다.

한편, 부패한 국가권력과 유착하면서 개신교는 사람들에게 “타락한 기득권 옹호 세력”으로 인식됐다. 더불어 “성추문, 교회세습, 금권선거, 횡령 등 온갖 타락한 행태로 사회적 평판이 추락했고, 신자 수의 감소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동성애’는 “세속화되고 소위 ‘부도덕한’ 사회에 종교가 공격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고 “개신교 내부의 위기로부터 외부의 적에게로 시선을 돌리게 함으로써 내적 단결을 도모할 수 있는 구심점을 제공”했다. 성서가 동성애를 죄로 본다고 두루 알려진 것이 여기에 도덕적 우월감과 힘을 실어 줬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개신교 위기 모면 전략으로 기획된 반동성애 운동이 오히려 교회 위기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 이들의 극성스러운 성소수자 혐오 표출은 개신교의 평판을 다시금 떨어뜨리고 있다.

성서는 동성애를 죄악시하는가?

저자는 2장에서 동성애 반대의 근거가 되고 있는 성서의 본문(창세기 19:1-29, 레위기 18:22, 20:13, 고린도전서 6:9, 로마서 1:26-27)들을 역사적·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그리고 성서가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게 아님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단, 로마서에 대해서는 단서를 둔다.)

이 장은 책에서 단연 빛나는 부분이다. 여성 성서학자인 저자가 오랫동안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기초가 되는 성서를 연구하고 성찰해 왔던 연륜이 묻어 난다.

먼저, 하느님이 ‘불과 유황으로 심판’하신 소돔의 죄가 동성애와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은 상당히 명백해 널리 수용되고 있다. 저자는 “구약성서와 유대교 전통에서 이 죄는 외부인을 적대하는 악행의 전형”이고, “가난한 사람을 냉혹하게 대하고 자신의 부를 가난한 사람과 나누지 않는 죄”를 의미한다고 말한다(사1:10-17;3:9; 렘23:14; 겔16:49-50 등). 소돔의 죄를 모종의 ‘성적인 타락’과 연결시키고 있는 부분조차(유다서 1:5-7) 동성애와 무관한, “다른 육체”(즉 인간과 천사)와의 결합을 가리킨다. 저자에 따르면 소돔을 “남색”과 연결시켜 해석한 것은 12세기부터였다.

좀 더 직접적으로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듯한 성서의 본문에 대해서는 어떤가? 레위기 본문은 남자가 “남자와 ‘여자가 자는 것’을 하면 안 된다. 그것은 망측한 짓이다. 그들은 반드시 사형에 처해진다”고 말한다. 고린도전서6:9는 “불의한 자” 중에 arsenokoitaimalachoi를 포함한다. 이는 “남색하는 자”로 번역돼 왔다.

보수적 개신교인들이 성서 본문의 다른 내용들은 자주 무시한다는 모순은 차치하더라도, 저자는 이 부분도 역시 반동성애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때 저자가 핵심적으로 논증하는 방식은 마르크스주의적 분석3과 상당히 비슷하다. 즉, 성서가 쓰였을 당시에는 오늘날의 성적 지향으로서 동성애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서 집필자들도 ‘동성애’를 반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레위기 본문에서 문제삼는 것은 “동성애가 아니라 남성간 삽입 성행위”, 특히 삽입되는 쪽이었을 거라고 본다. 당시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남자가 여자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의 arsenokoitaimalakoi도 무슨 뜻인지 지금까지 일치된 견해는 없다. 저자는 어원이나 다른 용례를 살펴보며 malakoi가 “남성스럽지 않은 남성”을 의미하고, Arsenokoitai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기껏해야 ‘경제적 강요에 의한 남성 성관계’를 의미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이 둘 모두 오늘날의 성적 지향으로서 동성애와 관련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성서의 일부 본문이 동성 관계를 우호적으로 그렸다고 하더라도(대표적으로 다윗과 요나단, 룻과 나오미 이야기) 오늘날의 동성애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라고 균형 있게 지적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성적 지향으로서 ‘동성애’라는 개념이 19세기 중엽에야 생겼다고 분석한다. 이전에도 동성 간 성적 행위는 있었지만, 그것이 오늘날처럼 인간의 근본적 조건이나 특징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또, 동성 관계에 대한 태도도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랐다4. 따라서 19세기 중엽 이전에는 체계적인 동성애자 차별·혐오도 없었다. 동성애자 차별·혐오는 자본주의적 현상이다.

저자도 책에서 성소수자 억압의 기원을 한 장을 할애해 다루는데, 이때 마르크스주의자인 해나 디가 쓴 《무지개 속 적색》(책갈피)을 주로 인용해 설명한다.

다만, 저자가 성서 집필자들이 몰랐던 오늘날의 동성애 개념을 “거의 평생 지속되는 배타적이고 동등한 동성 간 성 관계”로 설명하는 것은 협소해 보인다. 동성애 관계에는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일대일 관계뿐 아니라 더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한편 저자는 로마서 1:26-27에 한해서는 유보적이다. 저자는 이 본문이 남성 간 관계만이 아니라 여성간 관계도 문제삼고 있다는 점,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 듯하여”라는 구절을 보면 단지 성행위만이 아니라 “동성애적 욕망 내지는 성향”도 문제 삼는다는 점 등 때문에 다른 본문과 다르게 좀더 분명한 “반동성애적 본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것이 바울이 갖는 “시대의 한계”라고 설명한다.

저자가 특유의 신중함으로 해당 본문의 내용과 맥락을 구체적으로 꼼꼼히 따져 보는 과정은 흥미롭다. 또, 저자의 말대로 바울이 이방인이나 노예에 대해 급진적인 태도를 취한 것과 달리 성 문제에서는 전반적으로 보수적 관점을 보였기에, 당시 동성 관계에도 부정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다른 본문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동성애 반대와 같을 수 없다는 점을 더 강조하는 게 일관될 것 같다.

물론 위 성서의 본문들이 오늘날의 ‘동성애’를 문제삼는 게 아니라는 점만을 논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컨대 보수 복음주의자 중에는 이를 인정하면서 성서가 금지한 ‘동성 간 성행위를 하지 않는 동성애적 관계’만 성서적·신학적으로 허용하는 입장도 있다.5 하지만 이런 입장 역시 저자가 비판하는 문자주의적 성서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저자는 무엇보다 바울 공동체의 기본 바탕을 이뤘던 갈라디아서 3:28의 정신을 오늘날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노예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갈3:28)”인 것처럼, 오늘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동성애자나 이성애자나 하나다.”

이 책은 보수 기독교의 동성애 혐오와 맞서는 데에서 유용한 무기다. 동성애 혐오는 근본에서 자본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동성애 차별을 끝내려면 자본주의를 종식시키는 투쟁이 필수불가결하다.

MARX21
1 올해 8월 허 교수는 《동성애는 죄인가》 출간으로 소속 교단에서 면직(목사 직책 박탈)·출교(교단 제명)를 당했다. (그는 이미 은퇴했다.) 예장통합 교단 지도자들은 ‘성경은 동성애를 죄로 보지만 오늘날 교회는 동성애자에 대해 포용적이어야 하고, 퀴어 신학은 신학의 다양성으로 봐야지 이단일 수 없다’는 허 교수의 온건한 입장조차 용납할 수 없다는 편협함을 다시금 보여 줬다.
2 2005년 인구센서스 조사에서 처음으로 한국 개신교 신자 수가 줄었고 이는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이에 대해 김진호가 자세히 분석해 왔다. 김진호, 《시민K, 교회를 나가다》(현암사).
3 대표적으로 최일붕, ‘보수 복음주의자들의 동성애 혐오: 성서와 19세기까지 교회 전통은 동성애를 증오하지 않는다’, <노동자 연대> 174호.
4 이에 대한 유용한 논문으로는 노라 칼린, ‘동성애자 억압의 근원’, 《동성애 혐오의 원인과 해방의 전망: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책갈피). 노라 칼린은 동성 관계에 대한 태도가 사회마다 달랐음을 역사유물론적으로 분석하고, 19세기에 ‘동성애’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다룬다.
5 대표적으로 웨슬리 힐. 그의 입장은 《동성애에 대한 두 가지 견해 - 성경은 무엇을 말하며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IVP)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