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3호 2020년 3~4월호)

지난 호

특집:세계를 뒤흔드는 아랍 혁명 ― 의미와 전망

독재 정권의 무덤을 판 사람들

앤 알렉산더 67 33
118 2 1
1/8
프린트하기
이 논문은 현재 온라인에서 1페이지만 보실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21》을 구매하시려면, 구입처를 확인하십시오. (구입처 보기)
일부 논문은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번역: 차승일 / 교열·감수: 이수현

이집트 혁명이 일어난 지 몇 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혁명의 속도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빠른 만큼 혁명에 대한 규정도 매우 다양하다. 서방 언론들은 이집트 혁명을 “색깔 혁명”으로 묘사한다. 즉, 지도자 없는 “민중 권력” 운동의 기분 좋은 사례라는 것이다. 기만적인 미국 신보수주의자들 상당수는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의 퇴진이 무력으로 중동에 “민주주의”를 이식하려 했던 조지 W 부시의 노력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본다. <스트랫포>의 군사 평론가들과 <BBC>의 다수 선임 기자들은 이집트 혁명을 구식 군사 쿠데타로 본다. 이집트 혁명을 인터넷이 주도한 항쟁으로 봐야 한다거나 사악한 이슬람주의 음모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 글의 관점은 다르다. 나는 아래로부터 사회를 해방시킬 수 있는 힘이 조직 노동계급에게 있다는 것을 이집트 혁명이 보여 준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일은 반세기 넘도록 아랍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무바라크가 퇴진하기 며칠 전 파업이 이집트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지면서 갑자기 노동자들의 힘이 확연히 드러났다. 그러나 이집트 국가에 균열을 내고 항쟁이 일어날 조건을 창출한 것은 국내외 경제 상황의 변화라는 더 깊고도 장기적인 과정이었다. 특히, 호스니 무바라크의 아들 가말과 그 일당이 추진한 신자유주의 개혁이 세계경제 위기의 충격과 서로 맞물려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이 노동자들과 정권이 물질적·이데올로기적으로 갈라서는 데서 핵심적 구실을 했다.

그러나 혁명의 첫 단계(1848년 혁명이나 1917년 2월 러시아를 연상시키는 규모로 일어난 18일간의 대중 시위)는 이집트 “저항 문화”의 산물이기도 했다. 그 “저항 문화”는 지난 10년 동안 민중이 거리에서 국가에 맞서 투쟁하는 과정에서 성장해 나온 것이다. 서방 언론과 버락 오바마의 참모들은 “안정적인” 동맹국에서 갑자기 터져 나온 대중적 분노에 놀랐겠지만, 2000년 이래 벌어진 저항 운동들(팔레스타인 지지 운동,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 민주적 개헌 운동, 임금 인상과 노동조합 권리 쟁취 운동, 경찰의 고문에 반대하는 운동 등)의 흐름을 지켜 본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럼에도 항쟁 자체의 동역학을 분석해 보면, 1월 25일 혁명은 정치적 요구들과 경제적 요구들을 제각각 합쳐 놓은 것 이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대중 운동과 그것이 국가에 미치는 압력으로 말미암아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관계가 변했고 더 긴밀해졌다. 무바라크의 마지막 며칠 사이에 마침내 정권을 무너뜨린 것은 노동자들이 국가에 대항해 사회적 힘을 사용한 것, 특히 2월 8일 분출한 파업 물결이었다. 무바라크가 권좌에서 쫓겨난 뒤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거리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보면 혁명이 더 진전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고, 이미 그 가능성은 독재자가 물러난 다음주에 분출한 파업 물결에서 힐끗 드러났다.

  • 1
  • 2
  • 3
  • 4
  • 5
  • 6
  • 7
  • 8
닫기
x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