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0호 2017년 5~6월)

지난 호

특집: 러시아 혁명 100주년

부자가 아니라 민중을 위한 민주주의

샐리 캠벨 1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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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Sally Campbell, Democracy for the people, not for the money-bags, Socialist Review (January 2017)

번역: 최병현

[《마르크스21》 편집팀]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기회로 중요한 물음들을 재검토하고자 한다. 샐리 캠벨은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이 러시아 혁명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레닌의 무덤》의 저자이자 잡지 《뉴요커》의 편집자인 데이비드 렘니크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의 핵심 인물인 레닌이 “마치 점토 모형이라도 되는 양, 사회 공학을 통해 새로운 유형의 인간 본성과 행위를 창조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렘니크는 리처드 파이프스의 저작을 그 근거로 드는데, 파이프스는 러시아 혁명에 비판적인 우익 역사학자로 러시아 혁명을 “한 국가의 모든 생명을 거창한 계획에 종속시키려는 시도”라고 본다. 이들 모두 러시아 혁명은 레닌의 머릿속에서 나온 엄격하게 통제된 음모였고, 필연적으로 독재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통설을 의도적으로 유포한다.

그러나 1918년 레닌 자신의 말로도 이런 주장을 반박할 수 있다.

일개 정당이나 일개 개인의 의지로 혁명이 일어나거나, 또는 그자들이 부르짖는 것처럼 ‘독재자’의 의지로 혁명이 일어나고 대중 반란이 뒤따른 것이라는 주장은 가소롭기 이를 데 없는 주장입니다. 혁명의 불꽃이 타오른 이유는 오로지 러시아 민중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고통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낳은 참혹한 환경이 노동자들을 대담하고 결사적이며 용감한 한 걸음을 내디딜 것인지 아니면 굶주림으로 죽어 가며 파멸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러시아 혁명 100주년 내내 이런 주장을 반복적으로 듣게 될 것이다. 레닌과 볼셰비키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폭력적인 봉기를 이끌어, 1917년 2월에 차르 독재가 무너지면서 부상한 초기 의회 민주주의를 짓밟았다는 주장 말이다. 그러나 2월의 정치혁명을 낳은 자발적인 대중 파업의 분출부터 노동자 권력을 쟁취한 10월의 조직된 반란까지 1917년 혁명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수준으로 직접 민주주의가 펼쳐진 경험이었다.

이는 당시 러시아가 제한적인 의회적 대의민주주의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는 의미다. 레닌에게 혁명이란 “무한히 확장된 민주주의로, 부자들을 위한 민주주의가 아닌, 사상 최초로 가난한 자들과 민중들을 위한 민주주의”였다.

지난해 미국 대선의 기괴한 광경을 보면, 이 말이 오늘날에도 적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 민주주의란 투표 부스에 홀로 들어가서 지배계급의 대표들 중 하나를 뽑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의 입에 발린 소리와 달리, 트럼프는 “부자”들의 전형이다. 또한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했다면, 그녀는 지난 28년 중 21년 간 백악관을 장악했던 두 정치 왕조 중 하나의 일원으로서 여전히 지속하는 자본주의를 대표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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