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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Ⅱ: 1987년 6월 항쟁·노동자 대투쟁 30주년

1987년 6월 항쟁 30주년 ─ 무엇을 계승할 것인가?

MARX21

  1. 〈조선일보〉 2017년 3월 13일자 사설 ‘광화문광장 흉물 천막들 이제 걷어낼 때다.’
  2. 하먼 2004.
  3. 이미 1980년 12월 광주 미문화원이 불에 탔을 뿐 아니라 노동계급의 중요성을 인식한 투사들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4. 이원보 2013, p257. 매우 폭압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영등포 일대에서 격렬한 가두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5. 한홍구 2010, p108. 1983년 안기부의 보고서에는 사법부가 형량을 높여 정권의 인기만 떨어진다며 형량을 낮추는 조치가 들어가 있다.
  6. 서중석 2011, p219.
  7. 대우자동차 투쟁이 승리한 데에는 다른 사업장으로의 투쟁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의 용인과 양보의 여지가 있었던 사측의 상황이 작용했다. 하지만 10여 명의 소수 활동가들이 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노력을 1984년부터 꾸준히 진행해온 결과이기도 했다.
  8. 서중석 2011, p226.
  9. 서중석 2011, p273.
  10. 서중석 2011, p336.
  11. 〈워싱턴포스트〉 특파원 돈 오버도퍼는 당시 젊은 장성들이 시위대는 정당한 명분을 추구하고 있으며 군대를 동원하면 엄청난 파국이 초래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12. 서중석 2011, p368.
  13. 정해구 2011, p127.
  14. 한국기독교 사회문제연구원 편 1987, p65.
  15. 6월 10일부터 마산·익산·인천에서 노동자들은 ‘노동3권 쟁취,’ ‘임금 인상’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참여했다.
  16. 최장집 2017, p17.
  17. 손호철 2017.
  18. 최장집 2017, p53.
  19. 손호철 2017,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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