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1호 2019년 7~10월호)

지난 호

쟁점: 현재의 이슈들

1997년 1월 파업 돌아보기 ─ 노동자들은 어떻게 싸웠고 지금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김동철 10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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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시즘2019 발제문을 조금 수정한 글이다. 이 글은 <노동자 연대>에 실린 과거 기사들을 많 이 참조했다. 하지만 글의 내용에서 문제가 있다면 전적으로 필자의 책임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법 개악에 맞선 대응이 주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인 지금, 과거 노동법 개악에 맞선 파업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1996년 12월 26일 김영삼 정부와 여당인 신한국당은 개악된 노동법을 국회에서 새벽에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개악된 노동법에는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더 쉽게 해고할 수 있는 정리해고제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임금수준을 악화시키는 변형시간근로제, 파견근로제를 포함돼 있었다. 또한 노동자들의 연대를 가로막는 대표적인 악법이었던 제3자 개입 금지 조항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리고 교사, 공무원 노동자들의 노동조합도 인정하지 않았다.

노동법과 함께 안기부법도 통과됐다. 안기부에게 국가보안법 7조를 적용할 수 있는 수사권을 준다는 것이었다. ‘국내의 적’(좌파와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에 사용돼 온 국가보안법 7조에 대한 안기부의 수사권은 1987년 대중파업으로 폐지됐다. 이것을 다시 부활키는 것은 노동운동을 더욱 옥죄겠다는 선언이었다.

개악의 종합선물세트 같았던 날치기 법안은 노동자들의 분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민주노총은 즉각 파업을 선언했다. 첫날 노동자 14만여 명이 파업에 들어갔고 이후 연일 수많은 노동자들이 파업과 시위에 참여했다. 김영삼이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강경 대응하겠다고 윽박질렀지만 노동자들의 투쟁 열기는 더욱 높아졌다.

1997년 1월 중순에는 투쟁이 절정에 이르러 김영삼과 기업주들을 겁먹게 만들었다. 결국 1월이 지나기 전 김영삼은 노동법 재개정을 약속하며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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