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1호 2019년 7~10월호)

지난 호

특집: 동유럽 민주주의 혁명과 신중국 초기 노동자 투쟁

동유럽 민주주의 혁명 30년 ─ 국가자본주의 체제 붕괴의 교훈

정선영 9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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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바초프가 추진한 페레스트로이카는 경제 위기가 더 심해지기 전에 경제 구조조정을 하려는 정책이었다. 고르바초프는 비효율적인 공장들을 폐쇄하고,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산업을 통제하는 관료 기구의 규모를 축소하고, 관료적 명령 대신 시장을 통해 경제를 운영해 나가려 했다. 이는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 등이 추진한 신자유주의 정책과 유사했다. 고르바초프가 제출한 구조조정 계획에 따르면 노동자 1600만 명이 해고돼야 했다.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하기 위해 글라스노스트(개방)도 필요했다. 글라스노스트는 선거와 언론의 자유, 집회 시위의 자유 등을 매우 제한적으로 확대하는 정책이었다. 고르바초프는 자신의 개혁에 반대하는 관료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이런 정책을 제한적으로 시행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오랜 정치적 억압에 짓눌려 살던 사람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 행동하기 시작했다. 1987년 말 소규모 비공식 단체 수천 개가 조직됐다. 지역 공장으로 인한 환경오염, 핵 발전소의 위험, 지역 정치 거물들의 부패, 소수민족 언어에 대한 억압, 스탈린 시대 지방 주민의 운명 등의 쟁점을 둘러싸고 시위들이 벌어졌다.

이제까지 억압받아 온 민족들의 시위와 소요 사태도 거세게 벌어졌다.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발트해 국가들,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아제르바이잔 등 비러시아계 소수민족 공화국들에서 벌어졌고, 사회적 조건들에 대한 불만이 소수민족의 권리를 위한 투쟁과 결합됐다.

무엇보다 1989년 여름 소련의 광산에서 파업 물결이 거세게 벌어졌다. 고르바초프는 이 파업이 “체르노빌 발전소의 사고보다 더 심각하고 가장 어려웠던 문제”라고 했다. 파업이 시작된 메즈두레첸스크의 시비야스코프 탄광에서 제기된 최초의 요구는 경제적인 것이었다. 물통을 충분히 보급하고, 겨울에 좀 더 따뜻한 옷을 배급하고, 한 달에 비누 800그램을 제공하라는 것이었다. 소련에서는 비누와 분말세제가 너무 부족해 “더러운 얼굴을 한 사회주의”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였다.20 파업이 확대되면서 이 요구들은 좀 더 광범한 불만의 초점이 됐다. 경제적 요구와 정치적 요구가 결합된 구호들, 즉 ‘관료들을 타도하라!’, ‘철야근무 수당 40퍼센트 인상, 야간 근무 수당 20퍼센트 인상!’ 등이 제기됐다. 곧이어 연금 인상, 추가 휴일, 출산 휴가 연장 등의 다른 요구들도 추가됐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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