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1호 2019년 7~10월호)

지난 호

특집: 동유럽 민주주의 혁명과 신중국 초기 노동자 투쟁

동유럽 민주주의 혁명 30년 ─ 국가자본주의 체제 붕괴의 교훈

정선영 93 31
337 9 7
8/26
프린트하기 전체 보기 PDF 보기

초기 국가자본주의적 축적 과정에서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은 급격한 경제 성장을 경험했다. 특히 농업 부문에서 공업 부문으로 급속하게 노동계급을 빨아들이던 ‘시초축적’ 기간에는 국가의 폭력적인 억압 조처들이 효과를 발휘했다. 스탈린은 농민에 대한 강제 집산화, 강제 노동 수용소, 파업 노동자와 시위대 총살, 거미줄 같은 보안경찰 정보망 등을 이용해 시초축적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영국 자본주의가 3세기에 걸쳐 이룩한 것을 겨우 20년 만에 달성했고, 그 과정에서 1000만~2000만 명, 많게는 3000만 명이 죽임을 당했다.15

축적 과정에서 노동계급은 급속하게 성장했다. 1928년경 소련은 노동인구의 80퍼센트가 농민이었지만, 1953년 스탈린이 죽었을 때는 인구의 거의 절반이, 1985년에 이르면 3분의 2가 도시에 살았다. 전쟁 전의 동유럽 국가들도 오직 14퍼센트만이 노동자였지만, 1980년에는 그 비율이 60퍼센트로 늘었다.

그런데 경제가 성장할수록 초기의 착취 방식은 한계에 부딪혔다. 산업화 초기 국면에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해 미숙련 농민 출신 이주자들이 일을 하도록 강요할 수 있었다. 농촌을 떠나 새롭게 노동자로 편입되는 사람들은 대규모로 존재했고, 이들의 노동생산성이 낮은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산업이 발전할수록 노동 예비군과 원료는 바닥나기 시작했다. 노동과 원료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했고, 그러려면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음식과 휴가, 교육 등을 제공해야 했다. 그러나 이는 서방과의 경쟁을 위해 축적을 늘리고, 군비 투자를 늘려야 할 필요와 충돌했다. 소련과 동유럽의 지배자들은 소비재를 늘리겠다는 약속을 반복했지만, 실제 체제의 우선 순위는 바뀌지 않았다. 민중의 생활 수준이 상승하긴 했지만, 서방 선진국 수준만큼 생산성을 향상시키기에 충분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소련의 생산성은 서방에 비해 크게 뒤처졌다. 클리프는 이렇게 지적했다.

소련의 제조업 노동자 계급은 미국보다 3분의 1가량 더 많다. 소련의 제조업 기술자의 숫자는 미국의 두 배이지만, 생산량은 미국의 절반이다. 전체 인구 중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비율은 미국이 4퍼센트인데 소련은 30퍼센트이다. 하지만 그 4퍼센트가 미국 내에서 필요한 식량을 넉넉히 생산함은 물론 수출까지 하고 있다. 그에 비해서 소련은 소비 수준이 훨씬 낮은데도 식량을 수입하고 있다.16

게다가 자본주의적 축적은 그 자체의 특성상 결국 경제 위기로 이어진다. 잉여가치를 기계 등의 불변자본으로 투여하는 과정에서 실제 가치를 생산하는 살아 있는 노동력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어 이윤율이 저하하기 때문이다.

닫기
x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