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1호 2019년 7~10월호)

지난 호

서평

《임금 노동과 자본》, 《임금, 가격, 이윤》 카를 마르크스 ─ 모든 임금 인상 투쟁을 방어하며

김재헌 7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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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이해 관계를 가지고 “국민경제 붕괴의 위기”를 막아야 한다면, 지금 같은 경제 위기의 시기에 노동자들은 회사 살리기, 경제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 임금 인상, 일자리 지키기와 확대, 복지 확대 등은 지속 가능하지 않고 경제 살리기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자제해야 한다. 사회진보연대가 정규직 노동자들의 양보를 주장하고 최저임금 인상마저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임금 노동과 자본주의는 하나인데 자본주의 생산관계에 연연한다면 임금 노동을 철폐한다는 목표도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사회진보연대가 마르크스를 인용하며 노동운동이 임금 인상과 같은 경제투쟁에서 벗어나 “임금 제도의 궁극적 철폐”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별로 진지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장기 불황의 시기에는 일자리가 적고 실업자가 많아 노동자들 간 경쟁이 치열하므로 임금 인상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래서 사회진보연대는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대범한 운동들을 확대해야”2 한다면서, “노동자가 스스로를 상품으로 만들어 시장에서 경쟁하는 한 노동자는 시장의 수요공급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취업자와 실업자가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지 않으면, 취업자들이 더 높은 임금을 두고 경쟁하지 않으면, 자본주의의 시장법칙들은 힘을 잃는다.”3고 한다. 그래서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는 임금을 올려 격차를 더 벌리지 말고 임금과 일자리를 양보하고,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호봉제를 요구해서 기껏해야 상위 10퍼센트 임금소득자를 약간 늘리는 투쟁에 몰두하지 않으면 자본주의 시장법칙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이것은 성동조선소나 한국지엠 노동자들이 임금이 삭감되고 일자리를 줄이는 대안을 선택했으니 그들은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대범한 행동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황당한 주장이다.

마르크스는 “여러분이 공급과 수요를 임금 규제 법칙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쓸데없이 임금 상승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치는 것만큼이나 유치한 짓일 것이다.”(《임금, 가격, 이윤》)고 했다.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에서 경쟁에 내몰리는 것은 생산수단을 자본가 계급이 모두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 스스로 경쟁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생산수단을 자본가 계급에게서 빼앗아 와야만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이 사라진다. 노동자들에게 임금과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도덕적 훈계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에서는 “축적이 진전되는 것과 동시에 자본 구성에는 누진적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총자본 가운데 고정자본 부분 … 은 임금 또는 노동을 구입하는 데 할당되는 자본 부분에 비해 더 누진적으로 증가한다.” 자본가들이 타 자본가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기계 설비 등 생산수단에 더 많이, 더 빠르게 투자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개 노동자에게 불리하고 자본가에게 유리하게 상황이 전개된다. 축적이 잘 이뤄지는 호경기에 노동자들의 절대적 생활수준이 나아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자본가들이 더 많은 생산수단을 지배하게 돼 상대적 불평등은 더 커진다.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유지되는 한 이 방향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불리한 처지를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다. “잉여 시간이 강요된 것에 비례하여 임금을 인상할 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인상함으로써 과도 노동을 방지하려 한다면, 그것은 단지 자기 자신과 자기 종족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오직 자본의 전횡적 침탈에 대한 한계를 설정하는 것일 뿐이다 … 현대 산업의 모든 역사가 보여 주고 있듯, 자본은 만약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무모하고도 무자비하게 노동자 계급을 극도의 피폐 상태에 빠뜨리려 할 것이다”(《임금, 가격, 이윤》).

150여 년 전에 마르크스가 한 이 말은 오늘날 자본이 노동자들에게 가하는 행태와 다르지 않다. 10대나 20대의 꽃다운 나이에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산업재해로 죽어간 노동자들,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에 따라 자회사를 거부하고 직접고용을 요구했다고 해고된 1500명의 고속도로 톨게이트 수납원 노동자들, ‘해고는 죽음’임을 비극적으로 보여 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 등등.

마르크스는 “자신들의 가격을 놓고 자본가와 싸워야 할 필요성은 자신들을 상품으로 판매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조건에 내재해 있”고, “만약 자본과의 일상적 충돌에서 비겁하게 물러난다면, 노동자들은 틀림없이 더 커다란 운동을 주도할 자격을 스스로에게서 박탈하는 셈”(《임금, 가격, 이윤》)이라고 했다. 자본주의와 임금 노동을 철폐하는 더 커다란 운동을 이끌려면 이러한 일상적 투쟁을 건너뛸 수 없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했듯이 경제투쟁과 정치투쟁 사이에 만리장성은 없으며 “자본에 맞선 노동자들의 끊임없는 경제투쟁은 정치투쟁이 휴지기를 맞이할 때마다 노동자들을 지탱해 준다. 말하자면, 경제투쟁은 정치투쟁에 언제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노동계급 역량의 마르지 않는 저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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