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쟁점:현재의 이슈들

1930년대의 대불황과 미국의 뉴딜

이정구 21 34
356 1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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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루스벨트는 사회보장청과 사업진흥청 등을 설치하고 실업자들을 위한 노동 구제 제도를 마련했다. 특히 사업진흥청은 예산 규모가 50억 달러로 다른 어떤 기관보다 많았다(나중에 실행 과정에서 예산 규모는 65억 달러로 증가했다). 사업진흥청은 1935~1941년에 최고로 많을 때는 노동자 210만 명을 고용했다. 사업진흥청은 비효율적이고 수지가 맞지 않는 사업도 벌였지만 학교·우체국·사무소·공항 건설 등 사회적 가치가 있는 사업들도 벌였다. 사업진흥청은 실직 노동자 외에도 실직한 작가나 예술가도 지원했다. 사업진흥청과 함께 등장한 전미청년국은 16~20세 학생들에게 학자금을 지원했다.

1929년 820억 달러에서 1932년 4백억 달러로 떨어진 국민소득은 1935년에 거의 720억 달러로 상승했다. 이런 인상적인 경기회복 덕분에 루스벨트는 정부 지출을 대폭 삭감하고 균형예산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루스벨트는 연방준비은행의 이사회를 설득해 이자율을 인상해서 통화를 긴축시켰다. 또한, 구제 계획 예산을 삭감했다. 예를 들어, 1937년 1~8월에 사업진흥청의 예산을 절반으로 줄여 노동자 150만 명을 무급으로 휴가 보냈다.

이런 정책 전환은 비참한 결과를 낳았다. 경기회복의 토대가 매우 취약했을 뿐 아니라 민간 부문의 회복은 아직 기대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산업생산 지수는 1937년 117에서 1938년 5월 76으로 하락했다.37

 

표3. 1929~1941년 미국의 노동력, 고용, 실업(단위: 백만 명)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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