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일반 논문

한국전쟁의 성격과 그 결과

김영익 113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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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기적’은 노동자들을 비롯해 대중의 희생에 바탕을 둔 성공이었다. 그러나 경제성장 과정에서 대규모로 창출된 노동계급은 이내 독재 정권과 기업주들이 강요하는 조건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군부 독재를 끝장내는 주요 대중 저항에서 노동자들은 중요한 참여자들이었다.

한국전쟁 이후의 북한

북한에서 김일성도 한국전쟁 직후 급속한 공업화 노선을 취했다. 전쟁 이후 강화된 군사 경쟁의 압력에 대처하려면 무엇보다 한시 바삐 중공업 기반을 회복하고 성장시켜야 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 주민들이 겪은 미군 폭격과 파괴의 경험은 이런 노선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되는 데 기여했다.

김일성은 축적을 위해서라면 무자비하게 농업과 인민의 소비를 희생시키고, 중공업에 모든 물자를 쏟아붓고, 강력한 노동규율을 강요했다. 노동자와 농민에게 끊임없는 희생과 동원을 요구했다. 이에 대한 불만이 제기될 듯하면 박헌영 처형과 같은 공포 정치로 대처했다.

노동자·농민의 희생이 컸다. 북한 관료들은 어떻게든 노동자에게 가는 몫을 줄여서 축적의 재원을 확보하려고 했다. 경제의 고속 성장 와중에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그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으로 성장하거나 정체한 까닭이었다. 그리고 관료들은 매우 엄격한 노동관계법과 공장 규율로 노동자들을 다스렸다. 전시 노동규율이 전후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농민들의 처지도 마찬가지였다. 김일성은 농업 잉여를 전쟁 전보다 더 많이 끌어와 공업에 투자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휴전 후 김일성은 급속한 농업 집단화를 밀어붙였다. 농업 집단화로 많은 농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가 노동계급의 일원이 됐고, 국가가 곡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함으로써 도시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을 낮게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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