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6호 2020년 11~12월호)

지난 호

프리드리히 엥겔스

토니 클리프 12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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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 모든 것은 변하지. 예를 들어 예전에는 노예제가 존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졌고 임금노동이 나타났잖아.”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변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러나 인간 사이의 관계는 그런 변화와 무관하거나 그것을 초월하는 것처럼 보이곤 한다. 인간 본성은 고정된 것처럼 보인다. 엥겔스는 인간 본성이 역사적 조건의 일부임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 줬다. 아주 간단하게 설명해 보겠다. 탐욕이라는 문제를 한번 살펴보자. 나는 팔레스타인 출신이다. 팔레스타인에서는 배달원이 우유를 놓고 가면 아무도 집 밖에 우유를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상할까 봐 그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훔쳐갈까 봐 그러는 것이다. 지금 영국에서도 누군가 TV를 배달하러 왔는데 아무도 집에 없다고 TV를 그냥 문 앞에 두고 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유 배달원은 우유를 놓고 간다. 그렇다면 TV를 훔치는 것은 인간 본성이지만 우유를 훔치는 것은 인간 본성이 아닌가? 이것은 인간 본성과 무관하다. 이는 환경의 문제다. 우유는 싸다. 즉, 우유는 상대적으로 많다. 하지만 TV는 많지 않다. 엥겔스는 가족과 가족관계를 살펴보면서 가족이 기본적으로 계급 사회에 뿌리가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가족’이라는 것의 조건은 사유재산이고 가족 내에서 일어난 모든 변화들은 사유재산의 영향을 받는다. 엥겔스는 이 점을 자신의 작은 책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탁월하게 보여 준다.

마지막 몇 가지 논점은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는 주로 엥겔스의 사상에 관해 말했지만, 엥겔스가 행동가였다는 점을 빼놓고 엥겔스를 논할 수는 없다. 마르크스의 가족이 엥겔스를 뭐라고 불렀는지 아는가? 바로 “장군”이었다. 왜 그렇게 불렀을까? (1848년 내내) 마르크스가 수많은 놀라운 글들을 써내는 동안 바리케이드에 있었던 사람은 엥겔스였기 때문이다. 군대에 들어가 전투에 참여한 것도 엥겔스였다. 엥겔스는 행동가였다. 그리고 평생 동안 행동가로 살았다.

엥겔스는 행동가였기에, 마르크스가 사건에서 약간 떨어져서 볼 수 있었던 명확한 그림을 보지 못할 때가 종종 있었다. 이론이 단지 실천과 직접적 관계를 맺고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실천과 너무 직접적인 관계를 맺다 보면 거리를 잃어버리기 쉽다. 마르크스는 그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엥겔스는 가끔 그 거리를 잃어버렸다. 예를 들어, 미국 남북전쟁이 벌어졌을 때 엥겔스는 남부군의 승리를 예상했다. 왜 그랬을까? 엥겔스는 여러 가지 근거를 내세웠다. 남부군은 더 잘 조직돼 있었다.(사실이었다.) 모든 사관학교들이 다 남부에 있었다. 가장 뛰어난 장군들도 남부군에 있었다. 가장 뛰어난 장교들도 남부군에 있었다. 당연히 처음에는 남부군이 우세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의심의 여지 없이 북부군이 이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왜 그랬을까? 임금노동이 노예노동보다 더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그뿐이다. 그것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사실이다. 뉴욕이 텍사스보다 선진적이고, 그러므로 북부가 이길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회의 가장 천대받는 집단, 즉 흑인 노예들을 살펴보자. 그들은 어디에서 어디로 도망쳤는가? 북부에서 남부로 갔는가, 남부에서 북부로 갔는가? 그들은 북부를 원했다. 그래서 남북전쟁에 관해 엥겔스는 온갖 군사 지식에도 불구하고 틀린 예측을 했고 마르크스는 옳은 예측을 했다.

이 같은 토론의 핵심은 무엇일까?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 찬양일색의 성인전이다. 엥겔스가 모든 것을 알았고 언제나 옳았다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이지 진절머리가 난다. 마르크스가 항상 옳았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최악이다. 스탈린 치하에서 출판된 러시아 역사서가 레닌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보라. 레닌은 언제나 옳았을 뿐만 아니라 레닌의 아버지는 투사이고 진보주의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레닌의 아버지는 차르에게서 기사 작위를 받았다. 1881년 알렉산더 2세가 암살당했을 때 레닌의 아버지는 무엇을 했나? 교회에 가서 차르의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 하지만 찬양일색의 성인전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성인은 성인에게서 태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신약성서를 보라. 뭐라고 하는가?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고 가장 마지막 사람이 예수를 낳는다. 온통 누군가를 낳는다. 그러니 나는 사람들이 이 강연을 듣고 돌아가서 토니 클리프가 엥겔스는 훌륭한 사람이고 어떤 실수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정말 쓰레기 같은 생각이기 때문이다.

엥겔스의 장점 하나는 아주 적극적인 활동가였다는 점이다. 마르크스 생전에도 그랬지만 더 중요하게는 마르크스 사후에도 그랬다. 1883~1895년, 마르크스가 죽고 엥겔스 혼자 활동한 이 12년 동안 전 세계의 혁명가들과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엥겔스에게 연락해 조언을 구했다는 사실을 여러 군데에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엥겔스는 그런 조언을 하는 데에서 아주 후했다. 그는 영국은 물론 프랑스, 독일,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회주의 운동, 모든 대중운동에 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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