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6호 2020년 11~12월호)

지난 호

서평: 《인종차별과 자본주의》, 알렉스 캘리니코스, 책갈피 ─ 인종, 계급, 자본주의의 관계를 탁월하게 밝히다

임준형 171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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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는 그렇지 않았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자유로운 임금노동 착취에 기초한다. 임금 노동자는 법률적·정치적으로 착취자에게 종속되지 않는다. 그런 자본주의가 초기 성장의 결정적 국면에서 식민지 노예라는 부자유 노동을 사용해 엄청난 이득을 봤다.

또한 부르주아 혁명은 자유와 평등을 기치로 대중을 동원했다. 1776년 발표된 미국 독립선언문은 이렇게 선포했다. “사람은 모두 평등하게 창조됐다. 사람은 모두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창조주께 받았다.” 그런데 식민지 플랜테이션의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려고 1680년대부터 아프리카 노예 수입이 점점 더 늘고 있었다. ‘창조주’의 뜻을 거스를 것이 아니라면 이제 자본주의가 노예노동에 의존한다는 사실은 해명이 필요한 일이 됐다.

게다가 플랜테이션에서 노예와 다름없는 처지이던 백인 계약 이민 노동자들이 노예와 동질감을 느끼고 단결해 자신들의 주인을 머릿수로 압도하려 할지도 모른다는 점은 자본가들에게 실질적 위협이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자본가 계급은 흑인이 인간 이하의 존재이고 따라서 평등한 대우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사상을 개발했고 그것이 뿌리내리게 하려고 부단히 애썼다. “인종차별 탓에 노예제도가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노예제도의 결과물로서 인종차별이 태어난 것이다.”

이렇게 생겨난 인종차별 사상은 노예제도가 폐지된 뒤에도 살아남았다. 오히려 인종 생물학이라는 형태로 더 정교하게 다듬어져 유럽 강대국들과 유럽화된 미국이 나머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됐다.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은 생물학적으로 열등한 형질을 타고나 스스로 근대화와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없으니 백인은 열등한 인종의 이익을 위해 통치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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