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7호 2021년 1~2월호)

지난 호

신화에 가려진 쿠바

크리스 하먼 25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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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계적인 조직이나 논쟁이 부재한 가운데 핵심 결정들은 카스트로 중심의 작은 파벌에 의해 내려졌다. 이들은 자신들이 진심으로 추구한 이상들을 실현하려고, 상이한 사회적 압력에 반응하며 위로부터 책략을 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다른 사회 세력들에 실용적으로 대처하며 그들을 이런저런 방향으로 몰아갔지만, 자신들의 애초 이상에서 크게 벗어난 최종 결과를 피할 수 없었다.

개혁과 급진화

혁명 초기에는 다른 압력에 대한 실용적 대응이 혁명의 급진화를 낳았다. 쿠바 대중은 개혁을 요구했고, 새로운 정부가 이런 요구를 외면하려면 바티스타가 벌인 최악의 행태를 따라 대대적인 탄압을 벌여야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마도 새 정부는 훨씬 우파적인 정부로 빠르게 교체됐을 것이다(이것이 바로 1933년 혁명이 낳은 포퓰리스트 정부의 운명이었다). 비록 대중이 혁명 권력을 통제하지는 못했지만 혁명가들의 이상은 대중의 염원과 일치했다. 시어스가 강조하듯 “특히 쿠바 혁명 초기 3년 동안 대부분의 투자는 생산 투자가 아니라 사회 투자였으며 이 덕분에 다양한 측면에서 생활 수준이 향상됐다.”38 도시는 물론 농촌 노동자 대중에게도 의료 서비스를 저렴하게, 결국에는 무료로 제공하게 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문맹률을 낮추려는 정책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교육 기회를 누리고, 일 년 중 많은 기간을 실업자로 지내던 이들에게 (주로 중소 도시에서) 일자리가 제공되기도 했다.

하지만 파버가 분명하게 지적하듯, 이런 개혁은 미국 제국주의 및 쿠바 자본주의 주요 부문의 이해관계와 어긋났다.39 개혁이 추진되자 혁명 정부 안에 있던 주류 자본가 인사들이 하나둘씩 사임했고 상층 중간계급 대다수가 미국 마이애미로 도망갔다. 조만간 혁명 정부가 붕괴하면 다시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였다. 그러나 사태는 이런 기대와 매우 다르게 흘러갔다. 이들이 도망친 까닭에 개혁에 반대하는 사회적 기반이 약화됐고 그리하여 급진화가 더한층 심화됐다.

개혁이 미국 주요 기업들의 이해관계와 충돌하자 미국은 쿠바 정부를 물러서게 하려고 경제적 조처를 취했다(가장 유명한 예로, 미국 석유기업들이 러시아산 원유를 정제하지 못하게 했다). 쿠바 정부는 미국 기업, 뒤이어 쿠바 기업들을 인수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1961년 초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혁명 정부를 전복하려 한 피그스만 상륙작전이 실패로 끝나자 쿠바 정권은 유례없이 큰 지지를 받았다.

[피그스만 상륙작전 실패 후] 포퓰리스트 혁명에서 민간 자본가들의 이윤을 공격하는 쪽으로 바꾼 것이 애초 카스트로의 의도였는지를 두고 이후 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파버는 이것이 진정한 쟁점이 아님을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카스트로의 의도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1959~1961년 상황에서 개혁을 고수하는 논리는 미국 제국주의와 뒤얽힌 쿠바 자본주의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쿠바 경제의 주요 부문(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대농장, 가장 영세한 산업 및 서비스 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이 혁명 이후 3년 안에 모두 국유화됐다. 물론 노동자들은 이를 조금도 통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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