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지난 호

이집트 혁명에 대한 개괄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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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집트인들은 무슬림형제단이 오랫동안 무바라크에 맞선 것을 보상해 주고, 또 무슬림형제단의 복지 개혁 약속이 자신들의 절실한 필요를 충족시켜 주리라는 희망에서, 믿을 만한 유일한 전국 정당이었던 자유정의당에 투표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자마자 무슬림형제단은 대중 운동의 갈망과 분노가 폭발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자유정의당은 개혁된 자본주의를 원했다(대중을 향해서는 다른 제스처를 취했지만). 그러나 대중은 빵, 자유, 사회 정의를 원했다. 2012년 1월 25일 혁명 기념일에 수많은 사람들이 타흐리르 광장을 가득 메웠다. 항쟁 기념식에 참여한 무슬림형제단 지도자들에게는 공포스럽게도 대중은 더 많은 변화를 요구했다. 이틀 후 커다란 시위가 또 벌어졌고 대중은 무슬림형제단의 권력 파트너로 널리 인식되던 군최고평의회를 비난했다. “군사 정권 타도하라”, “군부 말고 문민[정부 — 마플릿]을 원한다” 같은 구호가 울려퍼졌다. 105

무슬림형제단의 계급을 가로지르는 성격과 그 내부 모순이 점점 더 첨예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2012년 4월 무슬림형제단 대표단은 워싱턴을 방문해 자신들이 미국의 중동 계획에서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고 미국의 정치인·전략가·사업가들을 설득하고자 했다. 한편, 자유정의당은 정의개발당과 긴밀하게 협력해 중동 지역 사업들의 연계를 강화하려고 했다. 2012년 9월 터키 정부는 이집트에 10억 달러 차관을 비롯해 20억 달러 지원을 약속했는데, 이는 막대한 재정 적자를 벌충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했고, 무르시가 IMF 차관을 끌어올 시간을 벌어 줄 것이었다. 수십 년간의 쟁투 끝에 무슬림형제단은 지도적 회원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변형된 신자유주의 어젠다를 추진하는 데 열중하는 시장경제의 대변자가 됐다. 그러나 2012년 6월 대선이 다가오면서 다른 정치 조류들도 전진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무슬림형제단의 방향에 대한 반대가 거세지는 가운데, 자유주의적 이슬람주의자들과 세속적 조류 모두 빠르게 성장했다. 압델 모네임 아부 엘포투는 자신의 대선 출마를 지원해 줄 연합체를 만들었고, (이때까지 주변적 정치 세력이었던) 나세르주의 정당 카라마당의 함딘 사바히는 노동자, 도시 중간계급, 도시 빈민의 폭넓은 지지를 모았다. 5월에 치러진 1차 투표에서 사바히는 21퍼센트 넘게 득표하며 주요 도시들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해 무르시 후보와 군최고평의회의 아흐메드 샤피크 후보(각각 [전체] 1위와 2위)에게 큰 충격을 줬다. 이것은 분명히 계급 투표였으며, 주요 사회·경제 문제를 해결해 혁명을 전진시키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보여 줬다. 사바히는 2000~2010년 반정부 운동을 벌였는데, 그 덕분에 그는 무바라크를 원칙적으로 반대한 사람으로 인정받았고 타감무의 부역 행위에 오염되지 않은 좌파적 선거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다. 사바히는 더 많이 득표할 수도 있었다. 일부 활동가들, 특히 타흐리르 광장 점거와 수 개월 동안 이어진 경찰과의 대치에서 핵심 구실을 했던 청년들 사이에서 선거 보이콧 캠페인이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이들은 선거 과정에 결함이 있어 이 선거로는 국내 정치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고 주장하며 회피적 정책을 택했다. 이는 새로운 좌파가 직면한 문제들 중 일부가 반영된 것인데, 수십 년간 투표 조작, 사기와 기만이 횡행한 역사를 거치며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이 발전시킨 선거 전략들이 대부분 잊혀졌기 때문이다. 선거 참여의 필요성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 속에서 결선 투표가 치러졌고, 무르시는 간신히 승리할 수 있었다. 106

무슬림형제단의 득표는 6개월 전에 치러진 총선에 비해 반토막났다. 총선 때 자유정의당은 약 1050만 표를 얻었지만, 대선 1차 투표에서 무르시는 겨우 570만 표를 얻었다. 결선 투표에서 무르시는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는데, 군최고평의회가 샤피크의 승리를 대중 운동을 정면 공격할 허가증으로 삼을 것을 우려한 무슬림형제단의 경쟁자 대부분이 결선 투표에서 무르시에 투표했는데도 그랬다. 자유정의당은 이제 대중의 이익과는 거리가 먼 이해관계를 가진 정당으로 의심받고 있었다. 의회 활동, 대통령 후보 출마와 관련한 부정직함, 친기업 정책, IMF 차관을 끌어들이기에 열심인 지도자들, 팔레스타인과 가자 지구 문제 해결 꺼리기 등 수많은 문제점들 때문에 자유정의당의 권위는 약화됐고, 만약 대선 결선 투표에 걸린 판돈이 그토록 크지 않았다면 무르시의 득표는 훨씬 더 적었을 것이다.

혁명은 계속된다

선거 이후 무르시는 전격적인 조처를 단행했는데, 군최고평의회를 설득해 그 기구의 지도자인 육군 원수 탄타위와 그의 최측근들을 군 지도부에서 사퇴시키고 문민 정부의 권력을 제한하려는 활동을 중단시켰다. 대중은 이 조처에 열광했는데, 전에 무르시가 장군들의 졸개일 뿐이라고 비난했던 사람들조차 그랬다. 이것은 무슬림형제단이 균질적인 집단이 아닌 것처럼 군부 엘리트도 분화하는 중이고 그중 일부 파벌은 무르시의 노선에 호의적이라는 점을 보여 줬다. 무르시는 군부의 특권을 보장해 주고 특히 위험 부담이 큰 대규모 투자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대신에 문민 정부에 더 많은 정치적 여지를 인정해 달라고 고위 장교들을 설득한 듯하다. 107 엘고바시는 무슬림형제단이 이런 조처를 통해 “이집트의 양대 과두 정부인 문민과 군부” 사이에 맺어진 양자 협정의 한 당사자로서 권력의 심장부로 진입하게 됐다고 논평한다.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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