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지난 호

반혁명의 유령들

알렉스 캘리니코스 5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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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11년[2012년의 오기] 6월 대선 결선 투표에서 무르시가 선두를 달린 것은 혁명 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이 대거 그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무르시에 투표하는 것이 ‘펠로울’, 즉 구체제 “잔당 세력”의 후보 아흐메드 샤피크를 저지할 유일한 방안이라고 여겼다. 이 투표에서 무르시가 51.73퍼센트 대 48.27퍼센트로 간신히 이긴 것은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광범한 불신을 보여 줬을 뿐 아니라, 이집트 사회의 보수층 사이에 반혁명 진영의 대중적 기반이 적잖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 세력들에 기회를 열어 준 것은 무르시 정부였다. 로버츠는 무슬림형제단이 집권을 도모하면서 사실상 제발로 함정으로 걸어 들어갔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집권 후 무슬림형제단은 자신의 파멸을 초래할 수도 있는 모순에 처했다. 이집트 부르주아지와 미국 정부를 만족시키기 위해 무르시는 정설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하려 했다.(물론, 예컨대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대로 연료 보조금을 삭감했다가는] 연료비가 상승해 반란을 촉발할지도 모르는 상황을 피하려고 IMF 차관 협상에서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기는 했다.) 이것은 대중에게 배신감을 안겨 주는 가장 큰 요인이었을 것이다. 무르시는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도 유지했다.

동시에 무르시는 (수니파 원리주의인 살라피주의 정당들과의 경쟁 압력 속에서) 무슬림형제단의 기반을 지키려고, 그리고 군부에 대한 불신 (완전히 정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때문에 자신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려 했다.(2012년 11월 “헌법 선언”이 대표적이다.) 더 일반적으로는 이슬람주의의 사회적·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 했다. 그럼으로써 무르시는 혁명가들과 광범한 부르주아지 모두에게 적대적인 여론을 샀다. 군대와 경찰, 무슬림형제단 지지자들이 시위대에 퍼부은 폭력과 소수 종교인 콥트교 신자들을 겨냥한 공격은 증오의 불길에 기름을 부었고, 이는 무르시 정부를 무너뜨렸으며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군부를 강화했다.

6월 30일 대규모 시위는 이집트인들의 진정한 대중 운동이었다. 무르시 타도에 성공했다는 점, 다시 말해 무르시가 2년 반 만에 대중 반란으로 타도된 두 번째 대통령이 됐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무바라크든 무르시든 그들의 해임을 집행한 것은 군대였다. 당연히 엘시시와 동료 군 장성들은 중립적인 “국민의 공복公僕”이 아니라 이집트 자본가 권력의 핵심 기구로서 움직였다.

이집트 혁명적사회주의자단체RS는 군부의 동기를 다음과 같이 설득력 있게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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