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지난 호

《국제사회주의자들의 기원》 서문

던컨 핼러스 88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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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1960년대) “시장 사회주의”와 탈집중화라는 쟁점으로 관료 내부에서 경제 운영 방식을 둘러싼 갈등이 벌어지기는 했다. 이를 이용해 일부 마오주의자들은 흐루쇼프가 소련에서 자본주의를 부활시켰다는 이론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사실 1950년대와 1970년대의 소련은 계급 구조나 권력 체계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정권이 전면적인 전체주의로 나아가는 1차 5개년 계획 때부터 소련은 노동자 국가가 아니게 됐거나(또는 민주집중파 주장대로 훨씬 전부터 노동자 국가가 아니게 됐거나), 지금도 노동자 국가이거나 둘 중 하나여야만 한다.

어느 쪽 대안이 옳든, 1927년 이후 소련 계급투쟁에 관한 트로츠키의 분석이 틀렸음은 명백히 드러났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사실, 현재 “정설” 트로츠키주의 경향 가운데 아무도 트로츠키의 분석을 옹호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름표로 분석을 대신한다. 그리고 그 이름표는 혼란스럽고 변화하는 내용을 은폐한다.

1938년에는 트로츠키의 정식이 전적으로 옳은지 아닌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실천적 결론은 분명했다. 제4인터내셔널은 스탈린주의와 자본주의 모두와 비타협적으로 투쟁한다는 입장이었다. 둘 모두에 맞선 혁명을 지지했다. 그러나 스탈린주의자들이 부르주아 정권들을 전복하기 시작할 경우 제4인터내셔널의 입장은 무엇인가? 이것은 완전히 빠져 있었다.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은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져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시대의 뚜렷한 과제가 된 시기에 개혁주의의 길을 택했다. 현재 스페인과 중국에 대한 코민테른의 정책은 “민주적,” “민족” 부르주아지에게 굽실거리는 것으로, 코민테른이 교훈을 얻거나 변화할 능력이 없음을 보여 준다. 소련에서 반동적 세력이 된 관료들은 세계 무대에서 혁명적 구실을 수행할 수 없다. 18

사실 이 점이 제4인터내셔널 창립의 역사적 근거였다.

트로츠키는 1940년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내에서 벌어진 논쟁에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새 입장을 옹호했다. 에이번, 번햄, 샥트먼 등이 이끈 혼란스런 반대파(러시아 문제에 관한 공통의 입장도 없었다)가 제기한 주장 하나는 스탈린이 히틀러와 불가침 조약을 맺고, 폴란드를 독일과 분할 점령하고, 발트3국을 점령하고, 핀란드와 전쟁을 벌이는 마당에 “소련을 무조건적 방어”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반대파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채택하고자 했다. “제국주의자들이 10월 혁명을 최종적으로 정복하고 러시아를 한 줌의 식민지들로 만들 목적으로 소련을 침공하면 우리는 소련을 지지할 것이다.” 19 그러나 우리는 소련의 핀란드 침공을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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