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지난 호

《현대 조선의 탄생》 ─ 북한 정권 탄생 신화 재탕하기

최영준 40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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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국유화는 토지개혁보다 늦게 시행됐다. 소련이 많은 양의 전리품과 중공업 공장들의 신상품을 자국으로 반출하고 공장설비를 철거한 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유럽의 소련 점령지들에서 벌어진 일이기도 했다. 배상금을 지불하던 국가들에서는 국유화가 늦게 시작됐다. 가장 오랫동안 배상금을 지불했던 동독은 1950년대 초반까지 명백한 사적 부문이 존재했던 유일한 동유럽 국가였다. 8

친북 좌파뿐 아니라 많은 좌파들은 북한이 국유화를 단행한 시점부터 사회주의 건설에 착수했다고 본다. 하지만 북한의 국유화는 전혀 급진적이지 않았다. 당시 김구의 한국독립당 강령도 토지 국유화와 주요 산업 시설 국유화를 말했다. 당시 좌익과 우익을 막론하고 급속한 자본 축적을 위해 상당 부분의 국유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상식이었다.

무엇보다 북한의 국유화 과정은 노동자 통제와 무관한 방향으로 진행됐다. 북한 당국은 생산수단의 “전인민적 소유”를 표방했지만 노동자들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거나 통제하지 못했고, 생산의 계획과 분배에 관여하지 못했다. 대중의 소비는 축적에 종속됐다.

북한은 국유화한 공장의 노동자들에게 오로지 생산 증대, 즉 더 많이 더 열심히 일할 것을 요구했다. 노동 규율 강화, 직장 이동 제한, 노동 규율 위반자 감금, 결근이나 지각 시 식량 배급량 삭감, 다양한 성과급 도입 등을 시도했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생산 목표를 달성하게 하려고 증산 경쟁 운동도 광범하게 벌였다. 그러나 《탄생》은 강요된 증산 경쟁을 노동자들의 자발적 동참으로 둔갑시킨다. “노동자, 사무원들은 그날 할 일은 그날에 마치자는 구호를 내걸고 증산의 불길을 올렸다. 기차가 정지되는 날에는 우리의 생명도 정지된다. 우리의 끓는 피로 기차를 움직이자.”

북한에서 당과 국가 관료들이 생산수단을 통제하고 자본 축적 과정을 지휘하고 노동자들을 ‘자주적’으로 착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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