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퀴어 이론, 트랜스젠더 정치

퀴어 이론과 그 정치

콜린 윌슨 13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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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와 섹슈얼리티 분야의 일부 활동가와 이론가는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라는 명칭을 부분적으로나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퀴어’queer라는 명칭으로 글을 쓰거나 단체를 만든다. 퀴어 이론과 그 정치의 기원은 1990년대이고 오늘날에도 영향력이 있다. 퀴어 이론과 그 정치의 전망에 입각해 집필된 책이 많고 대학 교과과정이 퀴어 이론과 그 정치를 다루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영국 리즈대학교는 ‘젠더, 섹슈얼리티, 퀴어 이론’이라는 석사과정을 개설했다. 더 중요하게는, 매우 급진적인 많은 LGBT가 자신들을 퀴어로 여기고 있고, 그런 관점을 채택해 정치 활동을 조직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10년에 영국 런던에서는 퀴어 이론과 정치가 무엇인지를 원형 그대로 보여 주는 그룹인 ‘퀴어 레지스턴스’Queer Resistance나 노동조합 활동가 단체인 ‘긴축에 반대하는 퀴어들’Queers Against the Cuts이 창립했다. 이 글은 퀴어 이론과 그 정치의 전개 과정을 추적할 것이다. 또, 퀴어 이론가와 활동가들은 퀴어 이론과 그 정치가 주류 LGBT와는 다른 급진적 대안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 주장을 검토한다.

지금까지 퀴어 이론의 사상을 접해 보지 못한 사람들을 비롯해 많은 독자들이 이전에는 정말이지 역겹게도 동성애자들을 모욕하던 말인 ‘퀴어’가 사회주의 출판물에 등장하는 것을 보고는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의 뒷부분에서는 퀴어라는 낱말의 사용 문제를 다룰 것이다.

LGBT 투쟁의 40년

퀴어 이론과 그 정치를 LGBT 운동의 맥락 속에 자리매김하고, LGBT 운동의 정치 사상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더 넓은 역사적 맥락 속에 자리매김해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1960년대와 1970년대: 해방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미국과 서유럽 사회에서는 매우 높은 수준의 정치 투쟁이 일어났다.2 1968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학생 시위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총파업을 촉발했다. 같은 시기 미국에서는 흑인 수천 명이 혁명적 단체인 흑표범당에 가입했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대중운동에 수백만 명이 참가했다. 베트남에서 미군 병사들은 상관들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 해마다 ‘상관 살해’ 사건 수백 건이 벌어졌다. 병사들이 적군과 전투를 벌이기보다 자기 상관을 죽이거나 중상을 입힌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운동에서 유력한 정치는 마르크스주의였다. 물론 흔히는 마오쩌둥주의로 뒤틀린 버전의 마르크스주의였지만 말이다.3

바로 이런 배경에서 현대의 여성 해방 운동과 동성애자 해방 운동이 시작됐다. 1969년 6월 말 뉴욕 경찰이 동성애자 술집인 스톤월을 습격했다. 스톤월을 자주 이용하던 레즈비언과 게이, 많은 흑인과 라틴아메리카계 이민자가 반격에 나섰다. 그들 중에는 드랙퀸[여성복을 입고 여성처럼 행동하는 남성을 가리킨다. 반대로 남성복을 입고 남성처럼 행동하는 여성을 드랙킹이라고 한다]도 있었다. 당시 어느 신문은 이 사건을 이렇게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