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쟁점:현재의 이슈들

기후 위기, 자본주의, 그린뉴딜

정선영 93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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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6월 30일 〈노동자 연대〉에 실린 기사를 일부 보완한 것이다.

오늘날 인류는 역사상 가장 심각한 기후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각국 정부들이 2015년에 맺은 파리기후협약의 합의안을 즉시 이행한다 해도 기온은 산업혁명 전보다 약 3.2도 상승할 것이라고 한다. 기온이 3.2도 상승하면 “그러리라고 상상도 못했던 빙상들이 녹아내리는 일은 현실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되어 있을 것이며 결국 마이애미와 다카(방글라데시의 수도)는 물론 상하이와 홍콩을 비롯한 수많은 도시가 침수될 것이다.”2

지금 지구의 온도는 1800년과 비교해 섭씨 1도 정도 상승했다. 이 정도만으로도 오늘날 위협적인 폭염 발생 빈도는 1980년대의 50배 이상으로 늘었다. 2019년 그 나라 전체 숲의 5분의 1 이상을 태우고 야생동물 10억 마리 이상을 죽음으로 내몬 호주 산불, 바하마 섬 절반 이상을 폐허로 만들어 버린 허리케인 도리안 등에서 봤듯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또, 영구 동토층이 녹으면서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이 흘러나오고, 곤충과 동식물, 미생물의 서식지가 변하면서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유행 가능성도 커졌다.

이 모든 재난에서 노동계급과 빈곤층이 더 큰 피해를 보고 있다. 폭염과 화재, 태풍, 전염병 등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 대부분은 노동계급과 빈곤층 사람들이다. 

기온은 계속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까지 많은 과학자들은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혁명 전보다 2도 이상 상승하면 대기와 해양, 생태계의 균형 상태를 깨뜨려 갑작스러운 변화가 닥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해 왔다. 바닷속의 이산화탄소나 북극 툰드라 지대의 메탄가스가 배출되거나, 만년설이 녹거나, 숲이 사막으로 변하는 등을 통해 말이다. 산업혁명 전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280ppm3이었는데, 과학자들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400~450ppm에 이르면 1800년보다 기온이 2도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이미 2016년 연평균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400ppm을 넘었다. 지난해 5월 하와이 소재 마우나로아 관측소에서 측정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무려 415ppm에 육박했다.

모순에 처한 각국 지배자들

세계 각국의 지배자들도 자본주의가 발 딛고 서 있는 지구 환경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알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WB도 기후변화가 세계 자본주의에 미칠 심각한 악영향을 경고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들도 모종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여긴다.

유엔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도 기후 변화의 심각성에 재차 경종을 울려 왔다. 2018년 IPCC는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를 발표해, 온실가스 배출을 과감하게 줄여야 한다고 했다. IPCC는 만약 기온이 산업화 전보다 2도 오르면 가뭄, 폭염, 해수면 상승 등으로 수억 명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이제까지 국제 협약들의 기준이었던 2도 이하 상승 목표를 1.5도 이하 상승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순배출량을 2010년 대비 최소 45퍼센트 줄이고, 2050년경에는 순배출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물론 이 순배출량이라는 용어는 기존 화석연료 체제와의 타협을 담은 상당히 미심쩍은 개념이다. 이에 따르면, 기존 화석연료 산업들을 다 전환하지 않더라도 나무를 심거나 탄소 포집·저장 기술(탄소를 압축시켜 액화한 후 지하 저장시설에 밀폐시키는 기술) 등을 통해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상쇄해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나무는 일시적으로 공기 중 탄소를 가둘 수 있지만, 죽거나 연소되면서 탄소를 다시 공기 중으로 배출한다. 또, 탄소 포집·저장 기술은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았고, 실현성도 떨어진다. IPCC가 각국 정부와 기업들의 압력이 작용하는 기구이다 보니, 기후 위기에 대한 심각한 경고와는 달리, 제시하는 실행 방안에는 이런 타협과 절충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런 제안조차 현실에서는 이행되고 있지 않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 각국 지배자들은 국제 협약들을 맺었지만,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못했다. 세계의 온실가스 배출 규모는 해마다 늘었다. 현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매년 2.3ppm씩 증가하고 있다.

물론 각국 정부들은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해 목표를 세우고 부분적인 규제 조처들도 도입해 왔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은 시장과 이윤의 논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압력 때문에 불충분했고, 엉뚱한 방향으로 왜곡되기 십상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1997년 교토협약에서 채택된 ‘배출권 거래제’다. 이는 이산화탄소 1톤당 배출권에 가격을 매겨 기업들이 국제 시장에서 이를 거래할 수 있게 하면 결국 가격 압력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논리에 따라 도입됐다. 그러나 이 협약은 화석연료 기업들과 이들을 지원하는 각국 정부의 압력으로 완전히 누더기가 돼 버렸다. 탄소 배출 기업들은 정부에 로비해 값싸게 배출권을 샀고, 이 때문에 탄소를 배출하는 데 큰 제약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배출권 거래제는 국제적으로 2005년부터 시행됐지만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효과가 없었다. 또, 할당량을 초과해 탄소를 배출한 나라들이 1990년대 우크라이나처럼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탄소 배출이 줄어든 나라에서 배출권을 사들이는 일도 벌어졌다. 결국 배출권 거래제는 실제 배출량은 줄이지 못하면서 수치상의 배출량만 조정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시장에 의존하는 식의 대안은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되레 다른 문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화석연료의 대안으로 제안되는 바이오 에너지(바이오 디젤, 바이오 에탄올 등 곡물이나 그 잔여물로 만드는 에너지)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바이오 에너지가 돈벌이가 된다는 이유로 카길 같은 대기업들은 브라질과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방대한 산림을 파괴하고, 플랜테이션 농장을 만들어 농민을 토지에서 몰아내는 등의 일을 벌였다. 환경 파괴적인 에너지 생산이 친환경으로 둔갑한 것이다. 미국에서 생산한 옥수수의 40퍼센트가 바이오 에탄올을 만드는 데 이용되는 바람에 세계적으로 곡물 가격이 급등하기도 했다. 이는 2011년 아랍 혁명의 주요인이었던 물가 폭등의 원인이 됐다.

최근에는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기업들을 육성하면 경쟁력이 상승해 탄소 배출 에너지원들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존재한다. 물론 지난 수십 년간 각국 정부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산업을 육성해 왔고, 이 에너지원들의 단가는 하락했다. 오늘날 세계의 신규 발전설비 가운데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은 70퍼센트에 달한다. 그럼에도 재생에너지는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난 10년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는 연평균 2.5퍼센트 성장했다. 그러나 화석연료와 핵발전도 연간 1.4퍼센트씩 성장했다. 그래서 대표적 재생에너지인 태양광과 풍력이 세계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 기준으로 여전히 5.1퍼센트에 불과하다. 화석연료에 기반한 에너지 생산에 이미 거액이 투자된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산업의 신규투자 증가만으로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경쟁 압박

각국 기업과 정부가 이윤 경쟁의 압박을 받는 것은 문제 해결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

세계 주요 선진국들의 상황을 봐도 알 수 있다. 미국의 트럼프는 지난해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했다. 대표적인 환경 파괴 기업인 셰일가스 기업들을 적극 후원하고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은 환경 파괴적 행동의 배경에는 경쟁 압박(특히 중국과의 경쟁)이 자리잡고 있다. 중국은 지난 수년간 고도 성장을 해 왔다. 그러는 동안 중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990년에 비해 4배 넘게 증가해, 2006년부터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섰다. 그러자 미국 지배자들의 다수는 기후 위기의 책임을 주로 중국에 돌리고, 환경 규제가 중국과의 경쟁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보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중국에서의 환경 파괴와 값싼 노동력 착취를 통해 많은 이윤을 얻어 온 미국 지배계급이 기후 위기를 중국 탓으로 돌리는 것은 위선이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지난 100여 년간의 탄소 배출에 더 큰 책임이 있다. 결국 미국·유럽연합·중국 지배자들은 모두 기후 위기를 낳은 공범들이다. 

국가간 패권 경쟁을 위해 미국·유럽연합·중국·러시아 등은 여전히 중동 석유의 통제권을 장악하려고 막대한 군사적 경쟁을 벌이고 있다.

유럽연합은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온실가스 규제를 상대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을 취해 왔지만, 이는 다른 나라들보다 탄소 에너지 의존도가 약간 낮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작고한 마르크스주의자 크리스 하먼은 이렇게 지적했다. “서유럽 국가들은 미국보다 탄소 소비가 적은데, 이것은 자체 석유 공급원이 없어서 그동안 석유 소비량을 낮게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대규모 핵발전소들을 보유하고 있다. 영국은 제조업 규모가 반으로 줄면서 온실가스 배출량도 줄었다.”4 1990년 이후 동유럽 경제가 심각한 침체를 겪고, 2008년 이후 유럽연합 경제가 저성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도 탄소 배출이 부분적으로 줄어드는 데 영향을 미쳤다.

유럽연합 지배자들은 이런 점을 미국이나 중국과의 경쟁에 유리한 조건으로 활용하려 한다. 그래서 유럽연합의 ‘그린딜’(녹색 정책)에는 탄소 국경세를 도입하는 등 미국과 중국을 겨냥한 보호무역 조처들이 담겨 있다.

그렇다고 유럽연합의 지배자들이 기후 위기 저지를 위한 핵심적 조처를 도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연합 지배자들이 내놓는 계획은 효과가 미심쩍은 탄소 배출권 거래제 등과 같은 시장경제 방식들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지난해 유럽연합 지배자들은 10년간 1조 유로 규모의 녹색 투자를 포함한 그린딜을 발표했다. 그러나 코로나19와 함께 심각한 경제 침체를 겪으며 이 계획은 후퇴하고 있다.

올해 4월 발표한 그린딜 관련 법안에는 2050년까지 순배출 0을 이루겠다는 포괄적인 선언만 담겼을 뿐, 구체적인 당면 목표는 제시하지 않았다. 유럽연합의 이와 같은 계획에 대해 스웨덴의 청소년 기후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2050년 탄소 순배출 제로는 포기한다는 의미”라며 수십 년 뒤가 아닌 매해, 매달의 계획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유럽연합 지배자들의 이와 같은 태도는 자본주의 이윤 논리와 기후 위기 해결을 조화시키려는 그들의 계획이 처할 수밖에 없는 모순을 보여 준다. 기후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고 보지만 결국 화석연료 기반 산업들의 이윤 논리를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화석연료 산업은 자본주의의 핵심부를 차지하고 있어, 만약 이들 기업이 파산할 경우 체제 전체의 안정을 뒤흔들고 다른 선진국들과의 경쟁에서 불리한 처지에 내몰릴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놔둔 채
기후 위기에 대처한다는 건 공상적

누구나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말하지만 그저 미온적 조처들만 시행되는 상황은 화석연료 산업이 자본주의 체제에 얼마나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실제로 자본주의의 체제는 화석연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19세기 초 증기기관과 기계의 발명을 낳은 산업혁명은 석탄을 빼놓고는 설명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석탄을 이용해 철강·선박·기차 등의 산업들이 크게 발전할 수 있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자동차와 비행기의 발전은 석유 사용 증가와 깊은 연관이 있었다. 양차 대전을 거치며 석유 사용은 더욱 증가했고, 플라스틱·고무·나일론·석유화학제품 등 석유 부산물 시장도 크게 성장했다.

단지 제조업뿐 아니라 식품 생산과 유통, 사무실 건물 가동과 난방, 노동자의 출퇴근, 노동자의 재충전과 재생산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는 데에도 화석연료가 사용된다. 비료·농약 등 농업 생산에 필수적인 산업도 화석연료 없이는 가동되지 않는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의 기간산업은 대부분 화석연료를 바탕으로 세워졌다. “화석연료는 자본주의 체제를 온전히 남겨둔 채 벗겨낼 수 있는 껍질 같은 게 아니다. 화석연료는 체제의 모든 측면에 깊숙이 박혀 있다.”(캐나다의 생태 사회주의자 이안 앵거스)

만약 재생에너지로 전면 전환하려면 이토록 어마어마한 투자를 모두 폐기 처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후 위기로 인한 재앙이 눈앞에 다가와도 자본가들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체제 전체로 보면 화석연료를 폐기하는 게 이익이라 할지라도 개별 자본가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이런 개별 자본가들의 맹목적인 경쟁을 동력으로 굴러간다.

게다가 화석연료 기반 산업들이 체제의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들 기업의 위기는 자본주의 경제 전체를 뒤흔들 것이다. 그래서 최근 각국 정부들은 화석연료 기반 산업들에 막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전 세계 정부들이 6월 초까지 기업에 지원한 경기부양 자금은 5213억 달러(약 630조 5000억 원)에 이르는데, 이 중 97.6퍼센트인 5090억 달러가 항공과 자동차, 석유회사 등 탄소 대량 배출 업종에 지원됐다. 재생에너지 등 녹색산업엔 2.4퍼센트인 123억 달러를 지원했을 뿐이다. 이는 각국 정부와 자본가들의 투자 우선순위를 보여 주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적 설명

이미 170여 년 전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환경 파괴적 특성을 지적한 바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이윤과 축적 논리 때문에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과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소외된 노동이 행해지는 상황에서는 인간이 자연과 맺는 관계도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마르크스는 《1844년 경제학·철학 초고》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 결과 마르크스가 “신진대사”에 비유한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관계가 파괴되는 것이다. 

적잖은 이들이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을 대립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노동력 착취와 환경 파괴의 근원은 같다. 자본주의의 경쟁적 축적은 노동력 착취에 토대를 두고 있고, 자본가들은 이윤을 위해서라면 가차없이 자연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과 자연의 이런 “신진대사 균열”은 자본주의를 폐지하고 노동자들이 진정 민주적으로 생산을 통제하는 것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 노동 착취와 환경 파괴 모두를 끝내려면 사회 혁명이 필요한 이유다.

작고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키드런은 1970년대 미국 생산물의 60퍼센트는 무기, 광고, 사치품 등 쓸모없는 것이라고 했다. 오늘날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량의 3분의 1은 단지 팔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버려진다. 전 세계 인구의 8억 명 이상이 절대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만약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해체하고 아래로부터 통제되는 민주적인 체제를 건설한다면 이런 불필요한 생산은 중단하고 노동자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위해 훨씬 효과적으로 자원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윤을 위한 경쟁이라는 자본주의의 근본 동역학이 존재하는 한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  —
전력 ‘민영화’ 가속시키는 친시장 정책

기후 위기에 턱없이 부족한 대책을 내놓고 있는 것은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특히 자동차·철강·석유화학·조선 등 화석연료에 기반한 수출 제조업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그래서 지배자들은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아주 소극적이다. 한국의 탄소 배출 증가율은 OECD 국가 중 1위다.

한국의 전력 생산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3.8퍼센트)은 OECD 평균의 6분의 1도 되지 않고, 온실가스 배출은 해마다 증가해 왔다. 2016년 기후변화 전문 언론 〈기후행동추적〉은 한국을 사우디아라비아·호주 등과 함께 ‘기후 악당 국가’로 선정했다.

문재인 정부는 국제 사회의 위상을 의식해, 말로는 이런 상황을 개선하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애초 예상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의 37퍼센트를 줄이겠다고 했다. 재생에너지의 비율을 2030년까지 20퍼센트로 높이겠다는 ‘재생에너지 3020’ 계획도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IPCC의 권고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은 계획인 데다 실현 가능성도 거의 없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이산화탄소 배출은 계속 증가해 왔다.

문재인 정부는 최근 그린뉴딜 계획을 발표했다. 코로나19와 함께 경제 침체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국가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한국판 뉴딜 계획에 그린뉴딜을 포함시킨 것이다. 그린뉴딜을 위해 정부는 2022년까지 12조 9000억 원을 투입해 일자리 13만 3000개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의 그린뉴딜은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데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턱없이 부족하다. 이번 3차 추경에서 정부가 그린뉴딜에 배정한 예산은 1조 4000억 원에 불과하다. 파산 위기에 내몰린 두산중공업을 지원하는 데 정부가 투입한 돈만 해도 3조 6000억 원에 달하는데도 말이다. 기후 위기 대처가 얼마나 후순위인지 알 수 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그린뉴딜의 내용은 정부가 직접 공공사업을 늘리는 방향이 아닌 시장과 기업 육성에 그 강조점이 있다. 그래서 탄소 배출 기업 규제는 빼놓은 채 재생에너지 산업에서 관련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는 사실상 전력 생산을 더한층 민영화하겠다는 계획이기도 하다. 즉, 민간 기업들이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게 하고, 이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가 규제완화를 하겠다는 계획이다.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출신으로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된 양이원영 씨가 공공연하게 밝힌 방안이다.

그러나 민간 기업을 육성해 시장 원리에 따라 재생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으로는 기후 위기 대처를 위한 대대적 에너지 전환을 이루기 어렵다. 오히려 민영화 정책은 요금 인상 등의 폐해를 낳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일자리 창출도 제대로 되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환경 파괴적인 정책도 서슴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공약을 어기고 화력발전소를 신설하고 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민간 대기업들이 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민영화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화력발전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기도 하다. 산림 개발 규제나, 식수원 근처 공장 규제 등 환경 규제들도 완화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이와 같은 위선은 이명박 정부가 2008년에 표방했던 녹색 성장 정책과도 비슷하다. 청와대 대변인 스스로도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은 이명박 정부 시절의 녹색 성장을 “지금 시대에 맞게 강화한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했다. 기후 위기와 경제 위기 대처 모두 시장경제에 충실한 방식을 따르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정부가 그린뉴딜을 표방한 이후 여러 지방자치단체들도 연이어 그린뉴딜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정부 발표 전인 지난해부터 그런 입장을 밝혀 왔다.

그러나 거창한 선언에 비해 알맹이는 거의 없다. 최근에 서울시는 코로나19 대응과 그린뉴딜을 위해 2조 2000억 원에 달하는 추경을 발표했는데, 그중 그린뉴딜 예산은 750억 원에 불과하다.

박원순 시장은 재생에너지 사업에 상당한 성과가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서울시의 재생에너지 확대 추세는 매우 느려 서울시의 에너지 소비 중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국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서울시는 환경 개선 위해 도심 내 교통량을 줄이겠다며 공영주차장의 요금 인상도 추진하고 있다. 땅값이 비싼 서울 도심 지하철 주변 공영 주차장의 요금을 3~4배 인상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요금 인상은 노동자와 서민층에 더 큰 부담을 줄 것이다.

개혁주의 진영의 그린뉴딜 — 제안 배경

지난해부터 개혁주의 진영에서 그린뉴딜 제안이 급속히 부상했다. 개혁주의 진영의 그린뉴딜 제안은 기후 위기를 심화시켜 온 지배자들의 무능을 비판하고, 사회 역량을 총동원해 화석연료에 기반한 생산방식을 신속하게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를 담고 있다.

이는 서구에서 기후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투쟁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제기됐다. 2018년 8월 스웨덴 청소년 그레타 툰베리의 발의를 계기로 유럽연합과 미국 등지에서 청소년들이 앞장서 기후 위기의 해결을 촉구하며 수업을 거부했고, 건물과 거리를 점거하는 행동도 벌어졌다. 이렇게 유럽연합의 청소년들이 촉발한 시위는 지난해 9월 150개 나라에서 400만 명이 참가하는 시위로 발전했다.

이 운동에서 인기 있는 구호는 “기후 변화가 아니라 체제 변화!”였다. 물론 “체제 변화”라는 구호는 운동 참가자들이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를 인식했고, 자본주의 체제를 바꾸는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이런 운동을 배경으로 2018년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이자 미국 민주사회당DSA의 일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가 그린뉴딜 법안을 제안했다. 그리고 이듬해 당시 미국 민주당 대선 예비 후보 버니 샌더스가 그린뉴딜을 공약으로 발표해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었다. 제러미 코빈 당시 영국 노동당 대표도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녹색산업혁명’ 정책을 발표했다.

주류 사회민주주의(버니 샌더스, 오카시오-코르테스) 또는 좌파적 사회민주주의(제러미 코빈) 정치인들이 운동의 요구를 반영해 그린뉴딜을 제안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들의 제안은 기후 위기를 막을 시급한 조처의 필요성을 공식 정치의 의제로 올려놓는 데에 기여했다. 탄소 배출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대규모 국가 투자와 동시에 양질의 일자리를 대규모로 창출해 불평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공약에는 지지할 만한 내용들이 많다.

그럼에도 그린뉴딜이 개혁주의 정치인들의 선거 공약으로 채택되는 과정에서 애초에 존재했던 급진적 요소들이 삭감된 측면이 있다. 그들은 그린뉴딜을 통해 “체제 대전환”을 이루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의 변화보다는 탄소 중심 에너지 체제의 변화에 강조점이 놓여 있다.

이 점은 그들이 그린‘뉴딜’이라는 명칭을 채택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두루 알다시피 뉴딜은 1930년대 대불황과 당시 성장하던 노동자 투쟁에 대응해 체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가 시행했던 정책이다. 당시 노조 상층 지도자들, 그리고 1935년부터는 미국 공산당도 뉴딜을 지지했다.

개혁주의 정당들의 그린뉴딜은 기후 위기 극복과 자본주의를 조화시키려는 관점을 바탕으로 제안됐다.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대책이 자본주의적 경제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대표적일 것이다. 그러나 앞서 서술했듯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들이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에 존재하는 상황에서 자본주의 이윤 논리와 기후 위기 해법은 조화될 수 없다.

개혁주의자들의 이런 전략으로 인해 개혁주의 진영의 그린뉴딜에는 급진적 요소와 체제 타협적 요소가 동시에 존재한다. 예를 들어, 제러미 코빈 전 영국노동당 대표는 에너지 기업 국유화 같은 공약을 제시했다. 그러나 동시에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관해서는 기업 육성 방안을 내놓았다. 시장과 타협하는 절충적 대안을 내놓았던 것이다.

버니 샌더스는 대규모 재정을 투입해 양질의 일자리 2000만 개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를 위한 재원 마련 방안에서 군사비 삭감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가 미국 민주당이 수호하는 제국주의 질서와의 타협이 불가피하다고 여기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또, 버니 샌더스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노골적 자본주의 정당인 미국 민주당을 통해 그린뉴딜을 추진하려다 보니 현재 바이든의 선거 운동에 협력하고 있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바이든의 선거 캠프에서 기후변화 분과 공동의장을 맡았다. 그러나 바이든은 신자유주의를 옹호하고 대자본과 권력층의 이익을 수호해 온 미국 민주당의 주류를 대표하는 인사이다. 그는 그린뉴딜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정의당과 녹색당의 그린뉴딜 

한국에서도 지난 총선을 앞두고 정의당과 녹색당 등이 그린뉴딜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한국에서는 기후 위기를 경고하는 운동이 서구만큼 크게 벌어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기후 위기를 우려하는 정서는 광범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당과 녹색당의 그린뉴딜 제안은 기후 위기를 막을 더욱 과감한 조처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기여를 했다.

정의당과 녹색당은 문재인 정부의 허울뿐인 그린뉴딜 정책을 비판을 하고 있기도 하다. 정의당은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이 이명박 정부 시절 “저탄소 녹색성장 시즌2”와 닮았다고 했고 녹색당도 “탄소 배출 감축 목표 없는 그린뉴딜? 이것은 그린뉴딜이 아니다” 하는 논평을 냈다.

정의당의 그린뉴딜은 서구 개혁주의 정당들이 선거 강령으로 제시한 그린뉴딜과 유사한 장점과 단점을 보여 준다.

정의당은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2050년까지 순배출 제로를 이뤄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전기 생산의 40퍼센트를 차지하는 석탄화력발전소를 2030년까지 모두 없애고 재생에너지 공기업을 설립해, 에너지 전환을 이루겠다고 했다. 또,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차로 대체하고 2030년에 전기차 1000만 대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주택과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그린 리모델링, 탄소세 도입 등의 정책도 제시했다. 지지할 만한 내용들이 많다.

그런데 정의당은 그린뉴딜이 경제를 성장시킬 전략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혁신가형 국가 모델을 말했는데, 이는 국가가 주도적으로 투자를 창출해 불평등을 해소하고 경제 성장을 이끄는 케인스주의적 방향을 의미했다. 이는 정의당이 국유화 같은 정책을 강조하는 좌파적 개혁주의 지향보다는 시장 원리를 상대적으로 좀 더 인정하는 주류 사회민주주의 지향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의당의 공약에는 “그린 벤처기업 육성”과 같은 친시장적 내용도 포함됐다.

또, 정의당은 그린뉴딜을 위한 재원 마련으로 녹색채권 발행, 탄소세 부과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 부담을 기업과 부자들이 져야 한다는 방향을 분명히 하지는 않았다.

정의당은 그린뉴딜을 노동자, 기업주 등과의 대화와 타협을 통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미래세대, 새로운 산업, 시민사회 및 노동자와의 정치 동맹,” 즉 “뉴딜정치동맹”을 통해 그린뉴딜을 이루겠다고 했다. 얼마 전 정의당은 그린뉴딜 특별법 초안을 마련했는데, 거기에도 이런 내용을 담았다. 그린뉴딜의 구체적인 내용은 기업과 노동자 대표, 시민단체 등이 참가하는 대통령 산하 기구인 그린뉴딜 특별위원회를 통해 마련해 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타협 추구는 애초의 공약을 후퇴시키는 것으로 이어지기 쉽다. 실제로, 정의당이 발의를 추진하고 있는 그린뉴딜 특별법에는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 0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방향이 담겼지만, 203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없애고 친환경 전력 생산을 하겠다는 내용은 빠졌다. 사실 이것이 정의당 그린뉴딜 정책에서 가장 핵심이었는데도 말이다. 아마도 여야 의원들과 기업인, 국가 관료들을 설득하려면 그들이 받아들일 만한 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이처럼 기업주나 국가관료·정치인들과의 타협을 통해 그린뉴딜을 추진하다 보면 기후 위기 극복이라는 애초 목표로부터 더 멀어지게 될 것이다.

녹색당은 생태주의에 근거한 급진적 개혁주의 정당으로, 탈성장이라는 관점에서 그린뉴딜 정책을 제시했다. 탈성장이라는 개념은 다소 모호한 면이 있다. 자본주의 생산방식을 문제 삼는 듯도 하지만 다른 한편 물질적 풍요 자체를 문제 삼는 듯도 하다. 그래서 녹색당의 정책에는 이윤 논리를 규제하는 제도 개혁과 함께 개인 소비를 줄이는 방향들도 함께 강조돼 있다.

이 점은 녹색당의 그린뉴딜 정책에 반영돼 있다. 녹색당은 정의당보다 더 급진적인 목표치를 제시했다. 나무 심기나 탄소포집저장기술 등 미심쩍은 기술을 이용해 수치를 맞추는 순배출 제로를 넘어, 탄소 배출을 원천에서 제로로 만든다는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50퍼센트 감축, 2050년까지 ‘배출 제로’, 2030년까지 탈핵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 탄소 배출 기업 규제 강화와 대중교통 완전공영제, 무상교통, 기존 건축물과 주택의 그린 리모델링 등을 제시했는데, 이런 요구들은 모두 지지할 만하다. 이와 함께, 육식 소비 줄이기나 식량 자급률 100퍼센트 달성, 전기요금 인상과 에너지 소비 감소 등 보통 사람들의 소비를 줄이기 위한 대책들도 녹색당은 함께 제시했다.

그러나 개인 소비 줄이기나 식습관 개선, 라이프스타일 바꾸기 등의 대책들은 기후 위기를 낳는 진정한 원인을 흐리는 좋지 않은 효과를 낼 수 있다. 한국에서는 10개도 안 되는 기업이 전체 온실가스의 50퍼센트 이상을 배출한다. 2017년에는 포스코 혼자 온실가스의 11.3퍼센트를 배출했다. 평범한 사람들은 여기에 책임이 없다. 운동의 타깃은 막대한 탄소 배출 생산을 통해 이윤을 얻는 기업들과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에 맞춰야 한다.

녹색당은 의회 의석을 늘려 이런 정책을 실현하려는 의회주의 전략을 택하고 있다. 이는 녹색당이 지난 총선 과정에서는 의석 획득에 목매며 민주당과 부적절한 타협을 추진(위성 비례정당 참여)하다가 내홍에 휩싸이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는 녹색당의 사회적 기반이 노동계급에 있지 않다 보니 한편으로는 정의당에 비해 급진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른쪽으로 타협하는 폭이 더 클 수도 있음을 보여 준 일화였다.

국가 기구를 활용해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있을까?

개혁주의 진영의 그린뉴딜은 단체별·개인별 차이는 있을지라도 대체로 자본주의 국가를 활용해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샌더스와 오카시오-코르테스 등은 모두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한다. ‘사회주의’(사실은 국유화)를 추구하지만 그 방식은 선거와 기존 자본주의 국가기구를 활용해 점진적으로 이뤄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아래로부터의 대중 운동의 의의를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그 주된 구실은 국가 기구 내에서 자신들이 개혁 추구하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본다.

정의당과 같은 사회민주주의 정당뿐 아니라 녹색당도 국가를 변화의 주체로 여긴다는 점은 비슷하다.

국가(중앙 정부 및 지자체)와 협력해 환경 정책을 실현하려는 것은 환경 NGO들이 오랜 기간 추진해 온 방식이기도 하다. 청와대와 환경부 등에 환경 NGO 출신 인사들이 여럿 포진해 있다.

그러나 앞서 문재인 정부와 서울시의 기후 정책의 문제점에서 봤듯 국가 기구에 개입해 기후 변화를 막아 보려는 계획은 전혀 성공적이지 못했다. 오히려 개혁주의 진영의 활동가들이 정부와 협력하려 애쓰는 동안 그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말로만 그린뉴딜을 말하고 실제로는 반환경 정책을 펴고 있는 정부의 실상을 가리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신자유주의에 타협하며 배신을 거듭했던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중도좌파 정부뿐 아니라 심지어 좌파 정당이 집권한 경우에도 기후 위기에 제대로 대처한 사례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리스의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인 시리자의 집권 경험은 이를 보여 주는 가장 최근 사례이다. 시리자는 유러코뮤니스트 공산당 좌파와 녹색당 계열의 활동가들이 함께 결성한 정당이었고, 2015년 집권 당시 친환경 정책을 펼 것이라는 큰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시리자는 그리스 전력공사의 민영화 계획을 철회시키겠다고 약속했고, 국유기업인 전력공사가 직접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재생에너지 산업에서 민간기업들 위주의 성장을 추구하는 유럽연합과는 달리 말이다.

그러나 시리자는 집권 이후 유럽연합과 IMF와 유럽중앙은행의 긴축 압력에 굴복해 전력공사의 민영화를 그대로 추진했다. 재생에너지 산업도 유럽연합과 마찬가지로 친시장적 방식으로 추진했고, 그나마 경제 위기로 인해 재생에너지 산업의 성장 속도는 전보다 더 느려졌다. 심지어 시리자 정부는 2018년에 지중해 동부에서 새로 발견한 (화석연료인) 천연가스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스라엘 및 이집트의 독재 정권과 새로운 동맹을 맺기도 했다. 이를 통해 지중해 동부에서 그리스가 터키와 벌이고 있는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 했다. 시리자 정부는 자본주의 국가 간 경쟁 압력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했다.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정부도 비슷한 한계를 보여 줬다. 에보 모랄레스는 원주민 출신 대통령이고 환경운동가로서도 명성이 높았다. 그러나 모랄레스 정부는 천연자원에 대한 채취를 늘리며 환경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모랄레스 집권 하에서도 이윤을 위한 아마존 우림 파괴는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모랄레스는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일들은 좌파 정부들도 체제가 가하는 이윤 경쟁 압박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는 단지 좌파 지도자들의 능력이나 개인적 의지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적 성격과 구조 문제에서 비롯한다.

자본주의 국가는 누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바뀔 수 있는 계급 중립적인 기구가 아니다. 군대, 경찰, 검찰, 사법부, 거대한 관료기구 등 국가 기구가 운영되기 위한 재정도 결국 노동력 착취에서 나온다. 그래서 국가를 운영하는 권력자들도 노동계급에게서 더 많은 이윤을 뽑아내어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즉, 자본 축적)에 이해관계가 있다. 이 점은 세계체제 속에서 자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국가의 위상과 군사력은 경제력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혁주의 정치인들이 선거를 통해 집권하더라도 선출되지 않은 군대, 경찰, 고위 관료층 등 국가 기구의 권력자들과 기업의 자본가들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이윤 논리에 순응하라는 압력을 행사한다. 개혁주의 정당들은 이에 타협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볼리비아처럼) 우익 쿠데타로 쫓겨나는 일이 반복돼 왔다.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인 그리스 시리자가 결국 유럽연합·IMF·유럽중앙은행이 강요한 긴축 정책을 받아들인 것은 가장 최근 사례일 뿐이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문제에서도 국가는 마찬가지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물론 일부 정부 인사들은 체제의 안정성을 위해서도 기후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들의 수익성이 급격히 떨어질 경우 경제 전체가 심각하게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조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의 일부 좌파는 제러미 코빈과 버니 샌더스의 그린뉴딜이 자본주의 “체제 전환 전략”이라고 본다.5 <참세상>에서 홍석만 씨도 “그린뉴딜을 통해 생산의 사회화를 달성”한다면 “자연 침해를 종식”하는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했다.6 국유화와 공공투자 등 국가 개입을 통해 ‘사회주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다 보니(좌파적 사회민주주의) 그린뉴딜 같은 정책을 확대해 사회주의에 이룰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설사 한 나라의 대기업 상당수를 국유화한다 할지라도 세계 경제가 여전히 자본주의 체제라면 그 국민경제는 이윤과 축적 그리고 경쟁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다른 국가와의 경제적·군사적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노동력 착취를 통해 이윤을 더 뽑아내야 한다는 압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사실 이는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과의 군사적 경쟁 압박에 시달리며 자국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무분별한 환경 파괴를 벌였던 소련과 같은 국가자본주의 국가들의 경험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물론 사회변혁노동자당의 동지들은 사회주의를 말할 때 국유화 등과 함께 “민주적 통제”도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기존 국가기구를 활용하는 것과 노동자들이 사회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과연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실제 역사의 경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나서 노동자들이 민주적으로 사회를 운영할 소비에트라는 노동자 권력 기구를 건설했을 때 자본가들과 권력자들은 기존 국가 기구를 이용해 노동자 권력 기구를 분쇄하려 했다. 이에 맞서 노동자와 병사들이 기존 자본주의 국가 기구를 분쇄하고 소비에트를 바탕으로 완전히 새로운 노동자 국가를 건설했을 때에야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다. 당시 기존 국가 기구를 활용해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졌던 여러 좌파 세력들은 노동자와 자본가의 충돌을 절충적으로 봉합하려 들며 결국 반혁명의 길로 빠져들었다. 그래서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자본주의 국가를 인수할 수 없고 분쇄해야 한다고 그토록 강조했던 것이다.

따라서 기존 국가 기구를 활용해 체제 전환과 변화를 이룰 수는 없고, 아래로부터 투쟁을 통해서만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다는 관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 국가 기구를 통해 체제를 변혁하려는 전략은 경쟁적 축적의 논리와 어떤 식으로든 타협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기후 변화와 계급투쟁

기후 위기를 막을 진정한 동력은 국가 기구(의회 포함) 내부가 아니라 그 바깥에서 벌어지는 대중 운동에 달려 있다. 기업주와 권력자들이 화석연료에 기반한 체제에 여전히 막대한 이해관계가 있는 상황에서 노동계급의 대중 투쟁을 통해 그들을 강제하지 않고서도 모종의 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공상일 것이다.

따라서 아래로부터 투쟁을 일관되게 전진시키려는 방식과 관점이 중요하다. 이윤·경쟁 논리와 타협하지 않는 혁명적 정치를 추구할 때만 그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급격한 기후 변화는 대중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며 사회 전반에서 정치적 긴장을 키우고 있다. 폭염, 산불, 전염병 등으로 인한 재난은 계급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사회 전반의 불안정성을 키울 것이다. 이는 정치적 위기를 심화시킬 것이다. 위기의 책임을 둘러싼 제국주의적 국가간 갈등도 더욱 심해질 수 있다. 

지배계급은 기후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그 고통을 노동자들과 빈곤층 사람들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 정부가 탄소세의 일종으로 유류세 인상을 시도한 것이 그런 사례이다. 이에 반발해 등장한 노란 조끼 운동은 “서민 세금 올린다고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없다”며 책임 전가 정책에 맞서 싸웠다. 결국 이들은 유류세 인상 조치를 철회시켰다.

지배자들의 고통 전가 시도는 노동자 구조조정으로도 나타난다.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신규 투자 증가세가 둔화하면서 위기에 빠진 두산중공업이 그런 사례이다. 올해 들어서만 노동자 750명이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해고됐을 뿐 아니라 여전히 해고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의 자동차 기업들도 경제 침체 상황으로 인해 수익성이 악화하며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차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것은 해당 기업들에게 추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세계 곳곳의 자동차 기업들은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떠넘기며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듯 기후 위기와 노동자에 대한 공격이 같은 이유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두 무자비한 자본 축적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그 뿌리가 있다. 이 체제의 이윤 논리에 맞서 기후 위기를 저지하기 위한 운동과 노동자의 삶을 지키고 개선하기 위한 투쟁 사이에 연계가 구축돼야 한다. 

물론 현실에서 이런 연계를 구축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위기에 빠진 두산중공업을 둘러싸고 다양한 쟁점이 존재한다. 두산중공업 노조 지도부는 핵발전소를 신규 건설해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라고 요구해 왔다. 노동자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경제주의적·부문주의적 관점으로 인해 잘못된 대안을 추구하는 것이다. 반면, 일부 환경단체들은 두산중공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반대하며 친환경적 산업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하지만 현재 벌어지는 노동자 해고 문제에는 눈을 감는다. 

그러나 두산중공업 문제의 진정한 대안은 노동자 구조조정에 일관되게 반대는 동시에,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석탄화력발전소와 핵발전 건설을 친환경 재생에너지 생산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하며 싸우는 것이다. 기업주와 정부의 이윤 논리에 맞서 투쟁과 연대를 전진시킨다는 관점이 분명할 때 이런 방향의 대안을 추구하며 운동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적지 않은 노조 지도자들이 ‘친환경적’ 산업정책을 통해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피해를 줄이는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사용자·정부와의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위기 시기에 대화와 타협을 우선하는 것은 결국 노동자 양보 수용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지금처럼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가 심화해 경제 침체와 기후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는 이윤 논리에 타협하는 개혁주의 정치의 한계와 모순이 더욱 커질 수 있다. 이윤 논리에 타협하다 보면 탄소 배출 감축 문제에서도 매우 부족한 입장을 취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윤 논리에 타협하는 태도로는 노동자들의 고용도 제대로 지킬 수 없다.

예를 들어, 지난해 현대자동차 노조는 전기차 시대에 대비한다며 사용자 측과 함께 고용안정위원회에 참가했는데, 그 자리에서 결국 노동자 20퍼센트 감축에 합의했다. 그러나 친사용자 측 전문가들은 이것도 부족하다며 40퍼센트 감축을 받아들이라고 압박했다. 양보 수용이 더 큰 양보 압박으로 이어진 것이다.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기후 위기에 맞선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도 투쟁을 일관되게 전진시키려는 혁명적인 정치가 중요하다. 

지난해 프랑스 노동자 파업 때 전력공사 노동자들이 발전소를 점거했던 일은 사회를 근본적으로 재편할 힘이 누구에게 있는지 힐끗 보여 줬다. 당시 노동자들은 대규모 상업지구의 전력 공급을 차단하고, 대신 노동계급과 서민층 사람들에게 싼값에 전기를 제공했다. 에너지를 만들고 통제할 수 있는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파업 기간에 보여 준 것이다.

오늘날 진보진영의 그린뉴딜 제안은 기후 위기의 진정한 대안을 둘러싼 토론을 촉발한다. 그린뉴딜 제안이 상당한 공감을 얻고 있는 것에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기후 위기에 대한 인식과 함께 변화 염원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혁명적 좌파는 이런 염원에 공감하며,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 속에서 진정한 대안을 토론해 나아가야 한다.

독일의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1916년 인류가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하는 갈림길에 놓여 있다고 지적한 한 바 있다. 오늘날 기후 위기는 이 물음을 다시 제기한다. 기후 위기가 심해질수록 야만의 위험성 대두와 함께, 체제가 사람들의 필요를 위한 것으로 대체될 필요성도 커진 것이다.

야만이 아닌 사회주의(물론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를 위해 기후 위기와 노동자 착취 모두에 맞선 투쟁과 연대를 전진시켜야 한다.

MARX21

참고문헌

강동진 2019, “’그린뉴딜’ 새로운 성장 전략인가? 체제 전환 전략인가?”, 《변혁정치》 97호. http://rp.jinbo.net/change/64009.
웰즈, 데이비드 월러스 2020, 《2050 거주불능 지구》, 추수밭.
하먼, 크리스 2007, “기후변화와 계급투쟁.” 〈맞불〉68호. https://wspaper.org/article/4840.
홍석만 2020, “기후위기와 녹색전환 그리고 계획”, 〈참세상〉 2020년 3월 16일자.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4690.

1 이 글은 6월 30일 〈노동자 연대〉에 실린 기사를 일부 보완한 것이다.

2 웰즈 2020.

3 ppm은 공기분자 100만 개 당 몇 개가 있는지를 나타내는 기호. 이산화탄소 400ppm은 공기분자 100만 개당 이산화탄소 분자가 400개 있다는 의미다.

4 하먼 2007.

5 강동진 2019.

6 홍석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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