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7호 2021년 1~2월호)

지난 호

핵·미사일과 경제난: ─ 북한 국가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을 보여 주다

김영익 113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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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0일 북한 평양에서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이 열렸다. 북한 당국은 새로운 무기들을 대거 선보였다.

가장 이목을 끈 것은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었다. 북한 당국이 이 미사일들을 시험 발사한 적이 없어서, 아직까지 실전 능력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외형상 특징만을 볼 때 기존 미사일들보다 성능이 향상된 듯하다.

이 밖에도 신형 방사포, 새로운 탱크 등 새로운 재래식 무기들도 대거 등장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열병식 연설에서 “최강의 군력을 비축해 놓았다”고 했다. 열병식에 공개된 새로운 무기들은 북한 당국이 그동안 군비 증강을 위해 군수 경제에 매우 많은 자원을 투입해 왔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런 군비 증강은 북한 주민 다수의 궁핍과 대조된다. 김정은도 열병식에서 “아직 노력과 정성이 부족하여 우리 인민들이 생활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했다. 앞서 8월 19일에 열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도 김정은은 혹독한 대내외 정세 속에 “국가경제의 장성(성장) 목표들이 심히 미진되고 인민생활이 뚜렷하게 향상되지 못하는 결과도 빚어졌다” 하고 인정했다.

2020년 세계식량계획WFP,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공동으로 낸 보고서를 보면, 2016∼2019년에 북한 주민 1220만 명이 만성적 영양 부족에 시달렸다. 이런 영양 수준은 결핵 감염률을 높여서, 최근 세계보건기구는 북한을 결핵 고위험국 30곳 중 하나로 지정했다.

올해 코로나19 팬데믹은 북한의 낙후한 보건의료 체계를 새삼 드러낸 계기였다. 북한 당국은 중국에서 코로나19가 퍼지자 바로 국경을 봉쇄해야 했다. 2020년 3월 김정은은 평양종합병원 건설을 독려하며 “수도에마저 온전하게 꾸려진 현대적인 의료보건시설이 없는” 북한의 현실을 인정했다.

이 와중에 풍수해가 북한을 덮쳤다. 지난 여름 태풍들이 잇달아 상륙하면서 “혹심한 자연피해”를 입었다.

우선순위의 문제

앞에서 언급했듯이, 오늘날 북한은 핵탄두와 다양한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는 중간 규모의 공업 국가다. 북한이 상당한 공업 능력과 자원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핵탄두와 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 다수 대중이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고,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기 어려우며, 잦은 자연재해에 시달린다.

북한을 사회주의 사회라고 보고 그 사회를 지지하는 좌파들은 흔히 북한에서 대중이 무상의료 등의 충분한 복지를 제공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북의 제도들 가운데 남쪽 서민들이 가장 부러워할 건 아마도 의료, 교육, 주택이 무상으로 제공된다는 사실 아닐까요? …. 일반적으로 아픈 사람이 병원에서 치료받는 전 과정, 즉 진단, 검사, 치료, 수술, 입원 등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 일체가 무료입니다.”1

식량난도 이제 옛일이라고 한다. “북이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처럼 아직도 식량이 절대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건 악의적인 사실 왜곡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북이 곡물은 곡물대로 100% 자급자족을 목표로 하면서 축산과 어업, 과일 채소류 등 농축산물 생산을 늘려 식생활 문화를 다변화하는 추세라고 보는 게 타당할 거 같습니다.”2

이런 주장들은 오늘날 북한 대중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한때 북한의 공공의료체계는 국제적으로 칭찬받는 수준이었고, 1982년 북한의 평균 음식섭취량은 남한보다 높았다. 그러나 1990년대 심각한 경제난이 닥치면서 북한의 공공의료는 급격히 붕괴해 버렸다. 이때 무상의료는 유명무실해졌다. “병원에 가도 필요한 약과 물품은 환자가 직접 구해와야 했어요. 그래도 돈이 있는 환자는 약을 구해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돈이 없는 환자는 그러지 못해 고통받았어요.”3

국제기구들은 공통적으로 북한이 1990년대 같은 식량 위기에 처해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식량이 부족하고 무엇보다 균형 잡힌 영양 공급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2019년 3월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이렇게 보고했다. “약 900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양질의 보건의료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북한 전역에 의료 시설들이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양질의 보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 의료장비나 생명을 구하는 데 필수적인 약품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부분적 개선이 있음에도, 북한에서는 많은 어린이들이 예방 가능한 병으로 사망한다. “설사와 폐렴이 5세 미만의 어린이들 사이에서 사망의 두 가지 주요 원인이다. ... 5세 미만 사망자의 90퍼센트 이상이 적절한 영양분, 필수 의약품 및 경구수액제를 통해 예방될 수 있다.”4

북한에서는 상하수도시설 같은 사회기반시설도 충분하지 않다. “인구의 39퍼센트, 약 975만 명이 안전하게 관리되는 식수를 제공받지 못하는데, 농촌에서는 이 수치가 56퍼센트로 오른다. … 전체 인구의 16퍼센트에 가까운 주민들이 기본적인 위생시설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5 평양 정도를 제외한 북한의 많은 지역들이 영양 섭취, 의료, 위생 등 삶에 필수적인 데서 많은 것이 부족한 상태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북한 당국이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면서도 코로나19 팬데믹 초기부터 국경을 봉쇄한 이유가 이해된다.

물론 오늘날 북한에서 많은 대중의 삶이 어려운 데는 미국 등이 주도하는 국제 대북 제재도 한몫했다. 예컨대 유엔 대북 제재의 ‘이중 용도’ 규제는 군수용으로 전환될 만한 민수용 물품이 북한에 가는 것을 광범하게 막고 있다. 인도주의적 구호에 필요한 물품이 제때 북한에 가는 게 어렵다. 금융 제재도 인도주의 국제기구의 북한 현지 활동을 제약한다.

북한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했던 스위스인 펠릭스 아브트는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가 북한 주민한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썼다.

“나는 평양 상하수도 시설을 복구하는 수백만 달러짜리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큰 손실을 입은 적이 있다. …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그것은 프로젝트 실행에 필요한 일부 소프트웨어가 미국의 대북한 제재항목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 결국 다국적기 업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를 주저했[다.]

“2000년대 중반 북한 핵실험에 대한 응징으로 가해진 유엔 대북 제재가 위력을 떨치던 시기에, 나는 제약회사 ‘평스’의 관리책임자였다. 유엔 제재로 인해, 약품 실험에 필요한 특정 화학물질을 더 이상 수입할 수 없었다. 이 약품 실험은 농촌마을 주민들의 보건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계획된 것이었다.”6

그러나 단지 대북 제재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북한 당국의 우선순위가 대중의 삶과 유리돼 있어서, 가용 자원이 중공업과 군비 증강 등에 우선 투입되고 대중의 보건과 안전에 관한 투자는 후순위로 밀렸다.

북한 관료들은 건국 이래 지금까지 국가기구를 이용해 노동자와 농민을 쥐어짜면서 한정된 자원을 중공업에 집중 투자해 왔다. 이들은 미국의 국가 존립 위협에 대처하고 남한과 군사적·경제적 경쟁을 해야 한다는 체제 생존 논리에 따라 이런 선택을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중의 소비는 축적에 체계적으로 종속됐다. 북한이 사회주의 사회였다면 축적은 대중의 소비 욕구에 좌우됐을 테지만, 현실은 정확히 그 반대였다. 중공업에 투자를 집중해 온 결과, 공업총생산에서 생산수단 생산 부문이 소비재 생산 부문을 압도했다. 1953년 당시 공업총생산에서 생산수단 생산의 비중이 38퍼센트이고 소비재 생산은 62퍼센트였는데, 이 비중은 극적으로 바뀌어 1975년에는 각각 66.5퍼센트와 33.5퍼센트를 차지했다.7

그리고 북한에서는 군수공업이 경제 ‘계획’에서 결정적 지위를 차지했다. 1968년 김일성은 “인민경제 부문들 앞에 나서고 있는 가장 선차적인 과업은 모든 힘을 다하여 국방건설을 지원하는 것”이고, “금속공장과 기계공장을 비롯한 모든 부문의 공장, 기업소들에서는 국방건설에 필요한 자재와 설비들을 먼저 잘 생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8

그러다 보니 북한 정부는 오랫동안 노동자들을 혹사하고도 윤택한 삶을 제공하지 못했다. 한국전쟁 이래 북한 정부는 모든 인민이 ‘쌀밥에 고깃국’을 먹을 날이 올 것이라고 약속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3월 김정은은 “전체 인민이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좋은 집에서 살게 하려는 것은 위대한 수령님[김일성]과 위대한 장군님[김정은]의 평생 염원”이라며 이를 위해 노력할 것을 당일꾼들에게 강조했다. 60여 년 동안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음을 실토한 셈이다.

대를 이어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일의 통치 기간에도 ‘계획’의 우선 순위는 김일성 때와 마찬가지였다. 이 점은 2006년 북한의 경제학 잡지인 《경제연구》에 실린 한 논문에 잘 나타나 있다. “군수 생산, 생산수단 생산, 소비재 생산 사이의 균형 설정에서 지켜야 할 원칙은 … 소비재 생산의 장성(성장)보다 생산수단 생산의 장성(성장)을 앞세우는 것이다. 군수 생산의 우선적 발전은 생산수단 생산의 우선적 장성(성장)을 요구한다.”9

북한 경제 자체의 모순에 더해 동구권이 붕괴하자 1990년대 북한은 심각한 경제 위기와 식량난에 빠져 들었다(‘고난의 행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규모 홍수 사태까지 일어나 상황이 더 악화됐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적게는 수십 만에서 많게는 수백만 명이 아사하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지만, 북한 당국은 경제 위기의 대가를 평범한 인민들에게 떠넘겼고 미국 등의 대북 압박에 대응해 핵·미사일 개발 등 군사력 증대를 우선시했다.

조선로동당 당력사연구소가 출간한 책에는 ‘고난의 행군’ 당시의 우선순위를 이렇게 밝혔다. “위대한 장군님[김정일]께서는 ‘일부 일군들이 인민생활 어렵다고 하여 경공업에만 힘을 넣고 중공업과 국방공업을 홀시하는 편향이 나타났을 때에는 우리는 어떻게 하나. 이미 마련된 경제 토대를 효과적으로 리용하여 경제를 추켜세우고 인민생활문제를 풀며 군수공업을 강화하여 현대적 무기와 군수기재들을 생산하고 사회주의제도를 지킬 생각을 해야 한다’고 일깨워주시였다.”10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전쟁 위협에 맞서 북한이 자위적 수단으로 핵·미사일 등을 개발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있다. 분명 미국 등의 대북 압박은 문제고, 반제국주의적 좌파라면 이에 일관되게 반대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진정한 반제국주의 투쟁이 아니다. 군사력으로 미국을 이기기 어려운 데다가, 무엇보다 미국과 남한 대중의 지지와 연대를 이끌어내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선군정치”는 북한 인민의 삶을 희생시킨다.

3대째 권력을 세습받은 김정은은 “인민대중제일주의”를 표방했다. “전당에 인민을 존중하고 인민을 사랑하며 인민에게 의거하는 기풍이 차넘치게 하고 당사업의 주된 힘이 인민생활향상에 돌려지도록 하여야 합니다.”11

그러나 팬데믹과 장기 불황이라는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북한도 예외일 수는 없다. 북한은 팬데믹을 막고자 국경을 봉쇄한 결과 대외 무역 급감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 와중에 김정은은 군수경제에 여전히 상당한 자원을 돌리고 있는 듯하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서 “한편에서는 부의 축적, 다른 한편에선 빈곤의 축적”이 이뤄진다고 비판했다. 이게 비단 서구 시장 자본주의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옛 소련이나 북한 등 동구권 국가자본주의에서도 구체적 형태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 같은 일이 벌어졌다. 오늘날 북한에서 핵·미사일과 다수 대중의 곤궁이 병존하는 모순의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북한 사회의 성격

북한이 서구 시장 자본주의와는 다른 사회라는 생각은 상식으로 퍼져 있다. 예컨대, 자유주의자들이나 대부분의 개혁주의자들은 대체로 북한을 서방 자본주의보다 퇴보한 사회로 여긴다. 2020년 9월 김정은이 연평도 피격 사건을 사과하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김정은을 “계몽군주”라고 지칭한 것에서도 그런 인식의 일단이 드러난다. 북한을 “3대 세습하는 왕조 국가”로 보는 시각에서 비롯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세습 독재와 다수 대중의 궁핍 등은 비자본주의적이거나 전자본주의적인 통치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착취와 관계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북한 관료들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남한과의 군사적·경제적 경쟁 압력에 대응해야 했다. 그래서 북한 관료들은 여느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처럼 강력한 국가 주도 경제 발전 노선을 추구했고, 한국전쟁 이후 중공업 중심의 급속한 공업화를 추진했다. 대중의 소비와 생활수준은 철저히 희생됐다. 분명 이것은 사회주의와 무관한 조처였다.

따라서 북한은 사회주의를 표방해 왔지만, 실제로는 남한 자본주의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사회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북한 관료는 더 오래, 더 강도 높게 일하도록 노동자들을 닦달했다. 그리고 대중의 불만을 통제하려고 거대한 억압기구(강제수용소, 공안 기구 등)를 만들어 착취 체제를 지탱했다. 북한 형법에는 남한의 국가보안법과 유사한 사상통제법 조항들이 있다. 최근 북한이 제정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은 이런 통제의 최신 버전일 것이다.

물론 북한은 국가자본주의적 축적 방식을 채택해 1950~1960년대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뤘다. 1960년대 초에 일부 서구 경제학자들은 북한을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 가는 공업국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자원이 부족하고 손 벌릴 외부 세계도 마땅치 않은 작은 국가가 급속한 공업화를 추구하다 보니, 여러 문제들에 봉착하게 됐다. 그리고 북한 국가자본주의는 서구 시장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경제가 위기로 치닫는 경향을 피할 수 없었다. 1970년대에 들어 세계 자본주의의 세계화 추세가 발전하면서 폐쇄적인 국가자본주의적 방식은 점차 낡고 변화에 뒤처지게 됐다.

결국 북한 경제는 1980년대에 이르러 정체에 빠져들었다. 옛 소련이 몰락한 후 북한은 혹독한 식량난을 동반한 끔찍한 경제 파탄을 겪었다. 미국의 대북 압박은 어려움을 증폭시켰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심각한 대내외적 문제들에 부딪힐 때마다 북한 관료들은 자꾸만 (권력 세습, 핵·미사일 개발 같은) ‘비정상적인’ 해법에 이끌렸다. 따라서 오늘날 북한이 “이상한 나라”가 된 것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 제국주의가 가한 압력과 북한 관료의 선택이 결합된 결과인 것이다.

김정은이 통치하는 오늘날의 북한은 1990년대의 최악의 상태에서는 벗어났으나, 여전히 경제가 온전히 회복되지는 못했다.

자유주의자들이나 개혁주의 정치인들은 북한이 시장 지향적 개혁·개방으로 나아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1990년대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옛 동방 블록의 경험이나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거듭 확인되는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보건대, 시장 지향적 개혁·개방은 북한 대중에게 대안이 아니다. 북한 노동계급한테는 ‘옆으로 게걸음 치는 것’일 뿐이다.

옛 소련, 북한 등을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 “현실 사회주의”라고 여기는 좌파들이 여전히 있다. 그들이 보기에 “현실 사회주의”의 문제점은 관료주의나 “생산력 발전만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는 생산력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관료주의와 생산력주의가 어디에서 비롯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리고 왜 관료주의와 생산력주의가 특정 시기에는 경제성장을 가능케 한 반면, 다른 시기에는 성장의 족쇄가 됐는지도 설명하지 못한다.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보기에, 이 사회들은 세계 체제에서의 경쟁 때문에 국가 관료들이 노동자들을 자본주의 생산의 법칙에 종속시킨 비시장적 메커니즘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래서 옛 소련과 북한 등을 (문제가 많음을 인정하더라도) 모종의 사회주의 사회라고 본다면,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이라는 사회주의 사상의 정수는 사라지고 만다. “현실 사회주의” 건설 경험을 보면, 사회주의에 반드시 노동자 혁명이 필요한 것은 아니게 되니 말이다. 관료나 게릴라 군대처럼 노동계급이 아니라 다른 사회 세력에 의해 사회주의가 가능하다고 본다면, 그것은 대리주의다. 그리하여 사회주의는 사회 생활의 모든 측면을 노동계급 스스로 결정한다는 의미와는 아무 상관이 없게 된다.

박노자 교수도 비슷한 주장을 한 적이 있다. 그는 경제 계획이나 국유 경제 덕분에 소련이 “다수의 생활수준을 경향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었]”던 반면, 관료의 독재와 민주주의 부재가 진정한 문제였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보면, 왜 관료 독재와 ‘계획’(실은 지령 경제)이 공존했는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게 된다. 소련은 곱절의 경제 규모를 지닌 미국과 군비 경쟁을 하기 위해 미국보다 곱절의 비중을 군비 부문에 투입해야 했고 이를 위해 정치적 이견을 강력하게 통제해야 했기 때문에 다당제와 민주적 권리들을 허용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는 정치적 권위주의와 짝을 이뤘다.

옛 동구권의 ‘계획’ 경제에 “민주적 요소”를 결합하자는 생각은 유러코뮤니즘 좌파의 “민주적 사회주의” 전략과 맥락을 같이한다. “민주적 사회주의”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민주주의 및 사회주의 개념과 크게 다르다. 유러코뮤니스트들의 “민주적 사회주의”는 사회주의를 “생산수단의 사회적(공공) 소유”로만 이해한다. 여기서 사회주의 앞에 붙은 수식어 “민주주의”는 의회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따라서 “민주적 사회주의”는 의회 민주주의가 정착된 나라에서 개혁주의적인 노동자 정당이 의회를 통해 집권해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시장 통제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결국 “민주적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적 의회제 민주주의를 확장하자는 것이다.12

반면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사회주의는 노동자 민주주의(노동계급의 자력 해방)다. 그들에게 사회주의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의 통일을 뜻했으며, 노동자 민주주의와 노동자의 생산 통제가 융합됐을 때만 이것이 실현 가능하다. 이것은 기존(자본주의) 국가의 민주화를 통해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이고, 오히려 기존 국가를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의 혁명적 운동으로 분쇄하고 노동자 민주주의 기관들(대표적으로 러시아 혁명기의 소비에트)로 대체해야만 가능하다.

다른 한편, 국제사회주의경향은 아니지만 옛 소련 등을 국가자본주의로 보는 좌파들이 있다. 예컨대, 마오쩌둥이 주도한 중국 문화혁명에 매료된 샤를 베뜰렝 등도 냉전 시절에 소련을 국가자본주의 사회라고 봤다.

토니 클리프처럼, 베뜰렝도 생산수단의 국가 소유가 노동자 국가임을 증명하는 기준일 수 없다고 봤다. 그러나 공통점은 그것뿐이었다. 사실 베뜰렝은 소련을 비판해 중국의 ‘사회주의 모델’이 우월함을 규명하고자 했던 것뿐이었다.13

베뜰렝은 소련에서 자본주의가 부활한 이유를 이데올로기적 환원론으로 설명했다. 즉, 볼셰비키의 이념 형성에서 ‘문화혁명’(이데올로기 투쟁)을 수행하려는 의도가 없었기에 스탈린주의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요컨대, ‘문화혁명’이 없어서 소련에서 자본주의가 부활했다는 것이었다.14

그는 러시아 혁명의 국제적 측면(국제 혁명, 특히 독일 혁명의 패배와 러시아 혁명의 고립, 서구 열강의 전쟁 위협 등)을 완전히 무시했고, 소련 내부의 계급투쟁을 세계 나머지와는 분리된 과정으로 봤다. 노동자 권력을 노동자들이 직접 행사하는 권력이 아니라 국가기구를 통제하는 자들이 대중에 주입하는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여겼다. ‘노동자 국가냐, 아니냐’는 노동계급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가 보기에, 스탈린주의 관료 체제의 발전은 부르주아와 그 사상과 관습이 점차 자율화된 국가기구에 완만하게 침투한 것이었다. 혁명의 고립, 러시아 경제의 후진성 등은 스탈린주의의 부상에서는 별 상관없는 일인 셈이었다.

이런 주장은 옛 소련 등의 국가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올바른 정치적 의지를 가진 지도부를 세우는 전환이 있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연결될 수 있다. 즉, 경제적 토대를 건드리지 않은 상부구조의 변화(정치 혁명이든 정치 개혁이든)로 충분하다는 함축을 갖게 되는 것이다.

윤소영 전前 한신대 교수도 베뜰렝 등을 따라 옛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라고 규정한다. 그도 베뜰렝처럼 러시아 혁명의 실패를 이데올로기의 역사로 치부해 버리는 식의 이데올로기 환원론의 문제를 드러낸다.15

그러다 보니 동구권 몰락에 대한 설명이 혼란스럽다. 예컨대 윤소영은 “냉전의 종식이란 체제 경쟁에서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게 패배했다는 의미”라면서,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한 대표적 사례로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치와 중국의 개혁·개방”을 꼽았다.16

윤소영은 “스탈린주의의 경제적 본질로서 국가자본주의는 농업집단화를 통한 중화학공업화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김정일 시절까지의 북한을 두고 농업집단화와 중화학공업화가 훨씬 더 철저했다는 의미에서 “극단화된 스탈린주의”라고 했다. 그런데 3대 세습 문제 등을 비판하면서는 “북한에서는 사회주의가 타락하여 급기야 절대군주정이 출현했습니다” 하고 규정했다.17

정리하며

오늘날 북한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근본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동역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정은이 열병식 연설에서 모든 인민이 “화목한 대가정”을 이뤘다고 말한 것도 계급 지배와 착취의 현실을 가리는 국민 단결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북한의 노동자 대중에게는 진정한 사회주의 대안이 필요하다. 1917년 러시아에서 노동자들이 그러했듯이, 북한에서도 노동계급이 스스로 기존의 관료 지배자들을 전복하고 자신들의 민주적 기구들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MARX21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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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익 2015, “가치법칙과 옛 소련, 그리고 다시 진영 논리”, <노동자 연대> 150호.
김하영 2014, 《북한 국가자본주의의 형성과 위기》 김하영, 노동자연대.
아브트, 펠릭스 2015, 《평양 자본주의: 스위스 사업가의 평양생활 7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오경섭 외 2018, 《북한 군사경제 비대화의 원인과 실태》, 통일연구원.
윤소영 2020, 《한국사회성격 논쟁 세미나(Ⅱ)》, 공감.
앰네스티코리아 웹사이트(https://amnesty.or.kr)
<연합뉴스>
Callinicos, Alex 1979, “Maoism, Stalinism and the Soviet Union”, International Socialism(Summer 1979).
DPRK Humanitarian Country Team 2019, <2019 DPR Korea Needs and Priorities>.
1 4.27시대연구원 2019.
2 4.27시대연구원 2019.
3 앰네스티의 탈북민 출신의 보건의료 전문가 인터뷰(2020년 6월 23일, https://amnesty.or.kr/36003/)
4 DPRK Humanitarian Country Team 2019.
5 DPRK Humanitarian Country Team 2019.
6 펠릭스 아브트 2015.
7 김하영 2014.
8 오경섭 외 2018에서 재인용.
9 오경섭 외 2018에서 재인용.
10 오경섭 외 2018에서 재인용.
11 김정은의 2015년 신년사 연설문.
12 김영익 2015.
13 Alex Callinicos 1979.
14 강동훈 2009.
15 강동훈 2009.
16 윤소영 2020.
17 윤소영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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