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35호를 내며

김인식 37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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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를 내며

이번 호에 모두 일곱 편의 글을 실었다. 먼저, 현실 정치 쟁점들을 깊이 있게 분석한 글이 세 개 있다 — 낙태, 미국 대선, 문재인 정부에서도 여전한 불공정 문제.

전주현의 ‘문재인 정부의 낙태죄 유지 법 개정안 논란 — 낙태는 왜 여성이 선택할 권리인가?’는 문재인 정부의 낙태죄 존치 결정이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경제적·지정학적 위기가 증대하는 상황에서 ‘저출산 심화’로 인한 노동력과 병역 자원의 급감이 ‘국가경쟁력’과 국방력의 하락으로 이어질 것을 한국 지배자들이 불안해한다는 것이다. 또, 전주현은 낙태죄 반대 진영의 입장도 검토하면서, 낙태를 여성의 문제로 여기는 흔한 인식에 도전하고 낙태가 기본적으로 노동계급의 문제임을 강조한다.

김준효의 ‘미국 대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는 대선을 앞두고 더한층 격화되는 미국 지배계급의 쟁투 이면에는 중첩된 위기 — 경제 위기, 지정학적 위기, 기후 위기, 코로나19 위기 — 가 낳은 정치적 양극화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트럼프는 극우 세력을 결집해 이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민주당 후보 바이든은 반(反)트럼프를 외치지만 친기업 성향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에 대해서도 의식적으로 거리를 둔다. 김준효는 민주당 ‘차악’론을 비판하면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같은 대중 운동이 전진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 운동을 극우와 파시즘에 맞선 도전으로 확대·심화시키려는 혁명적 정치와 조직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양효영의 ‘왜 문재인 정부에서도 불공정성은 여전한가? —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본 청년 문제와 공정성’은 전임 우파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도 청년들의 열악한 현실과 불공정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이유를 분석한다. 근본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수호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계급으로 분열돼 있기 때문에 애당초 공정이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이다. 양효영은 청년들이 겪는 불평등의 원인을 규명하고 답을 내놓으려는 다양한 시도들 — 정의당의 정의론, 세대론, 세습론 등 — 에 대해 균형감을 가지고 비평한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을 익히고 토론하기 위한 글을 두 편 실었다 — 토니 클리프의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 서평.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창립자 토니 클리프(1917∼2000)가 1996년 영국 맑시즘 행사에서 한 연설을 옮긴 것이다. 올해는 엥겔스가 태어난 지(1820년 11월 28일) 200년이 되는 해다. 클리프는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이인자 그 이상이었고 마르크스주의에 지대하게 — 종종 마르크스로부터 독자적이었고 마르크스를 앞지르기도 한 — 기여했음을 강조한다. 또, 마르크스를 엥겔스와 대립되는 인물로 그리려는 시도들이 실은 (엥겔스가 행동가였다는 점을 겨냥해) 이론을 실천에서 분리하려는 데서 비롯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클리프는 엥겔스에 대한 찬양 일색의 성인전 쓰기를 단호하게 거부하면서 엥겔스가 마르크스주의에 기여한 공헌을 공정하게 평가한다.

김은영의 ‘마르크스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출발점’은 《공산당 선언》을 서평한 것이다. 《마르크스21》은 이번 호부터 혁명적 사회주의 전통의 주요 사상가들이 쓴 가장 중요한 책들을 차례로 소개하고자 한다. 김은영은 《공산당 선언》이 최초 발간된 지 17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마르크스주의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필독서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신간 2권을 소개한다 — 《인종차별과 자본주의》,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 》

임준형의 ‘인종, 계급, 자본주의의 관계를 탁월하게 밝히다’는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인종차별과 자본주의》를 서평한 것이다. 임준형은 인종차별이 이전에는 없던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새로운 특징이라는 캘리니코스의 지적을 상기시킨다. 즉, 인종차별이 자본주의가 세계적으로 가장 유력한 생산양식으로 발전하던 시기에 그 기반이 된 노예제도를 정당화하려고 개발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예제도는 없어졌지만 인종차별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 생물학적 인종차별이 문화적 인종차별 등으로 그 형태가 바뀌었어도 그 변화를 과장해서는 안 되는 이유, 인종차별 반대 투쟁과 계급투쟁의 관계 등을 다룬다.

성지현의 ‘보수 개신교의 동성애 혐오와 성서 오독에 맞서는 유용한 무기’는 박경미 이화여자대학교 신약성서학 교수의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 성서학자가 들려주는 기독교와 성소수자 이야기》를 서평한 것이다. 성지현은 보수 개신교의 동성애 비난과 반대가 계속되는 와중에 개신교 내부자가 이를 반박했다는 점, 저자가 동성애 반대의 근거가 되고 있는 성서의 본문들을 역사적·비판적으로 검토해 성서가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게 아님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는 점을 책의 장점으로 꼽는다.

자본주의 체제가 다중 전선들에서 심각한 위기를 겪는 오늘날, 체제를 비판하고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려는 다양한 급진주의적 진보 담론들이 움트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를 자처하는 이들 내에서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성을 거세하고 (좌파적) 개혁주의로 퇴색시키려는 시도들도 있다. 우리는 이런 사상적 흐름을 면밀하게 파악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가 이런 다양한 급진적 사상들과 대결하지 않고서는 내일의 혁명적 새싹들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마르크스21》을 뚝심 있게 발행해 이런 현실에 돌파구를 내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독자들의 관심과 기여를 당부한다.

2020년 10월 14일

김인식(편집팀을 대표해)

MARX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