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3호 2020년 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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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6월 항쟁: 1987년 민중운동의 장엄한 파노라마》 ─ 장엄한 민중항쟁에 대한 탁월한 보고서

한규한 13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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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 1987년 민중운동의 장엄한 파노라마》 서중석, 돌베개, 2011

6월 항쟁은 한국 현대사에서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6월 항쟁: 1987년 민중운동의 장엄한 파노라마》의 저자 서중석의 주장처럼 “6월 항쟁으로 (분단)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자유가 폭넓게 획득되었다. 그 자유는 푸른 하늘 사이로 잠시 보였다가 사라진 4월 혁명기의 자유와도 달랐다.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이제 자유와 민주주의의 나라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서중석 2011, 673쪽. 이하 쪽수만 표기)

이 책은 6월 항쟁을 학술적으로 분석한 책은 아니다. 그리고 이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이 책은 부제가 말해주듯이, “민중운동의 장엄한 파노라마”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일차적 목적이 있는 듯하다. 이 책의 생생한 현장감은 저자가 밝히듯이, 1987년 8월 발행된 <말> 12호와 1987년 7월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펴낸 《6월 민주화 대투쟁》에 크게 의존했기 때문이다.(11) 이 문헌들은 당시 거리 항쟁을 생생하게 보고했다. 또, 집권 군부 세력의 동향,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이하 국본) 내 각 세력들의 대응, 학생운동의 노선 등을 항쟁의 전개 과정과 함께 결합해 설명하려 노력한다는 점도 장점이다. 이 책을 마르크스주의적 분석과 더불어 읽고 싶다면, 당시 트로츠키주의자로서 항쟁에 참가했던 최일붕의 짧은 논문1과 그를 인터뷰한 기사2를 추천한다.

브루스 커밍스는 6월 항쟁을 “1년 전 필리핀의 ‘황색 혁명’과 함께 1989년 유럽 공산주의 정권들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한 대대적인 민주화 저항의 선구”라고 평가한 바 있다.3 사실, 1970~80년대 한국에서 권위주의가 강화되고 이에 맞선 민주화 운동이 발전한 것은 당시 동아시아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예를 들어,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진 데 따라 나온 닉슨 독트린과 미국의 대중국 전략 변화는 동아시아 국가들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이에 따라 동아시아 나라의 지배자들은 권위주의 반동을 강화했다. “그것은 권위주의 체제 등장의 도미노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4 1970년 캄보디아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은 론놀이 쿠데타를 일으켰고, 1971년 타이 군부는 의회를 해산하고 계엄령을 선포했고, 1972년 필리핀에서는 마르코스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한국에서는 박정희가 유신을 선포했다.

역으로 1986년 필리핀의 민주화 항쟁, 1987년 한국의 6월 항쟁, 타이완의 계엄령 해제, 1989년 중국 톈안먼 항쟁 등은 탈권위주의 시도의 도미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한국의 6월 항쟁은 1986년 독재자 마르코스를 끌어내린 필리핀 민주화 항쟁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저자도 이 점을 놓치지 않는다. “필리핀의 ‘피플 파워’는 한국 민주화 운동의 대리전쟁이었다. 학생들과 민주 인사들은 필리핀의 민중 혁명이 실패한다면 당분간 우리 민주주의는 곤경에 처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똑같은 이유로 전두환 정권은 그것이 실패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121-122) 실제로 지배 권력은 1986년 들어 거세진 저항을 ‘필리핀 사태’라는 프리즘으로 바라보았다. 예를 들어, 당시 안기부장 특보였던 박철언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1986년의 국내 정치는 무척 소란스럽게 시작되었다. 2월 4일, 경인지역 15개 대학의 대학생 1000여 명이 서울대학교에서 ‘86 전학련 신년 투쟁 및 개헌서명운동추진본부 결성대회’를 갖고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2월 6일, 김영삼 민추협 공동의장이 신민당에 입당했고 다음날 당 고문으로 취임했다. 2월 25일, 1984년 7월 미국으로 건너갔던 김종필 전 공화당 총재가 귀국했다. 대학생들의 반정부 투쟁이 거세지면서 그동안 숨을 죽이고 있던 구정치인들이 본격적으로 정치에 복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필리핀의 혁명적인 정치 상황과 맞물려 있었다.5

1986년 들어 전두환 정권이 저항 운동에 매우 강경한 탄압으로 대처하게 된 데는 ‘필리핀 사태’에 대한 두려움도 반영돼 있었을 것이다. 전두환 정권의 강경 탄압은 1천여 명의 구속자를 낸 건국대 사태, 부천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살해 사건 등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런 강경 탄압은 결국, 정권의 무덤을 파는 행위였음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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