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6호 2020년 11~12월호)

지난 호

특집 1:민주주의의 성격을 묻는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 마르크스주의적 관점

폴 르블랑 58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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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Paul Le Blanc, What do socialists say about democracy, International Socialist Review 74(November 2010).

번역: 김종환 / 감수: 최일붕

“민주주의는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나온다.” 하워드 진이 자신의 훌륭한 영화 <민중이 말한다>의 도입부에서 전하는 메시지다. “명령을 거부하는 병사, 화가 난 여성, 반란에 나선 미국 원주민, 노동자, 선동가, 반전 시위대,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 등 각종 반체제 인사들처럼 흔히 말썽꾼이라 불리는 바로 그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가져다줬다.”1 이런 통찰을 통해 진은 오늘 우리가 다루려는 주제, 즉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 특히 카를 마르크스가 제시한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에서 중요한 핵심을 제시했다.

오랫동안 우리[미국인]는 우리가 이상적인 민주주의 국가, 즉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자유와 정의를 보장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들어 왔다. 우리가 주인이라는 이 공화국 미국에서 민주주의, 곧 대중에 의한 통치가 실제로 얼마나 구현되고 있는지 어디 한번 따져 보자. 개념상 ‘공화국’은 선출된 대표자들이 통치하거나 정부를 세우는 것을 뜻한다. 대중에 의한 통치와 정확히 같지는 않은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말하겠다. 아무튼 불완전하게나마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것은 정부가 대중을 대신해 무엇이 최선인지를 결정하고 대중 위에 군림하는 것보다 나은 것은 분명하다. 오늘날 많은 우파는 사회주의가 후자를 지향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그러나 20세기의 비극 중 하나는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그런 거짓말에 힘을 실어 준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그 때문에 “대중에 의한 통치”는 사회주의와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국유화, 국가의 경제 통제, 정부 계획을 사회주의로 봤고, 대중이 언젠가는 자신의 삶을 직접 결정할 수 있겠지만 아직은 안 된다고 말했다. 사회주의 운동의 ‘온건파’라고 불린 엘리트주의적 개혁주의자들과, 소련 스탈린 체제의 독재자들은 이런 ‘위로부터 사회주의’ 사상을 자신들의 핵심 이데올로기로 삼았다. 오늘날에도 이와 비슷한 논리로 북한 같은 독재 정권을 ‘사회주의’라고 부르는 평범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개념 때문에 혼란을 겪었다. 그러나 아프리카계 카리브해인인 혁명적 국제주의자 C L R 제임스가 썼듯이(그의 말에서 프롤레타리아라는 단어는 노동계급이라는 단어와 같은 뜻이다),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다.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는 사회주의가 절정에 달한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결과로 이뤄지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가 자신과 대다수 민중을 행동에 나서게 하는 바로 그만큼 사회주의 혁명은 전진한다. 프롤레타리아는 자체의 위원회, 노동조합, 정당 같은 조직들로 자신을 주체적인 세력으로 만들어 간다.2

C L R 제임스에 앞서 이탈리아 공산당 지도자 안토니오 그람시, 중국 공산당 내 좌익반대파 천두슈, 페루 마르크스주의자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기 등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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