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3호 2020년 3~4월호)

지난 호

특집 2:좌파가 저지를 수 있는 오류들

경제주의란 무엇인가?

던컨 핼러스 88 33
185 2 1
1/5
프린트하기
이 논문은 현재 온라인에서 1페이지만 보실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21》을 구매하시려면, 구입처를 확인하십시오. (구입처 보기)
일부 논문은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번역: 이수현 / 감수: 최일붕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는 언제나 노동자 투쟁에 동참할 때 해당 투쟁을 더 큰 사회적 맥락 속에서 보려고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노동자 투쟁의 현장에서 언제나 상당한 비중으로 작업장 밖 쟁점을 선동해야 한다는 것을 뜻할까?
던컨 핼러스가 쓴 이 글은, 영국에서 국제사회주의자IS 동지들이 노동자 투쟁에 개입하면서 정치적 요구를 충분히 제기하지 않았다는 비판에 대한 응답이다. 핼러스는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노동자들의 생활·노동 조건을 방어하는 투쟁에 집중해야 하는 까닭, 노동자들의 의식을 잘 알아야 지도와 계급의식을 결합시킬 수 있다는 것, 그 반대인 구호 만능주의의 위험 등을 분석하고 있다.

1972년 건설 노동자 파업 때 국제사회주의자들IS은 이런 구호들을 제기했다. “파업을 확산시키자”(당시 건설노조UCATT 지도부는 파업을 일부 작업장으로 제한하려 했다), “전국적 전면 파업을 벌이자”, “아직도 작업중인 건설 현장, 시멘트 작업장, 기타 건설 자재 공급처 앞에서 대대적으로 피케팅[대체 인력 투입 저지]을 하자”, “모든 협상장에 선출된 파업위원회 대표들을 들여보내자”, “주 35시간 노동, 30파운드 지급 요구에서 후퇴해서는 안 된다” 등을 포함해 이와 비슷한 요구들을 많이 제기했다. 이 구호들은 다양한 사람들한테서 “경제주의”라는 비판을 받았고, 그 비판은 그럴 듯하게 들렸다.

그런데 이 구호들과 다른 노동쟁의들에서 등장하는 비슷한 구호들이 옳고 그른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그것은 따져 봐야 할 문제다. 그리고 제대로 판단하려면 해당 산업의 상황, 노동자들의 정서, 노동조합의 상황, 사용자들의 전략 등을 만만찮게 분석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구호들을 “경제주의”로 치부한 비판가들은 [그런 분석 없이] 그 구호들이 “정치적”이지 않으므로 단연코 틀렸거나 적어도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 구호들은 “단지 투쟁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 단체[IS]의 한 동지도 그런 견해를 표명하며, “건설업·토지·은행·금융사 국유화와 노동자 통제”가 핵심 구호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대륙에서 온 한 방문객도 파업을 “정치적으로 만드는” 것만이 올바른 노선이라고 우리에게 충고했다. 즉, 혁명적 조직의 회원들, 세입자들, 건설 노동자들로 이뤄진 ‘파업 지원 위원회’를 세워서 “값싼 공공 임대주택 확대”를 선동하며 가을에 열릴 노동당 전당대회에 “대중적으로 개입”하려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건설 노동자들이 “보수당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총파업” 없이는 승리할 수 없다고 천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리를 비난하기도 했다!

이 제안들이 모두 정치적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그러나 그런 제안들이 실제 상황과 연관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그럼에도 보편적 요구를 내놓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도 전에 제기한 바 있다. 우리가 다양한 투쟁에서 노동자들이 실제로 채택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구호들을 내놓는 것이 올바른가? 아니면 노동당이나 정부 등등을 겨냥해 보편적이고 “정치적”인 요구들을 강조해야 하는가? 과연 ‘경제주의’란 무엇이고, 그것은 우리에 대한 정당한 비난인가?

레닌과 ‘경제주의’

20세기 초에 러시아 마르크스주의 운동의 지도자들, 특히 레닌은 운동 내의 이른바 ‘경제주의’ 경향에 맞서 정치 투쟁을 벌였다. 레닌은 ‘경제주의자들’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그는 경제주의자들이 “노동계급 투쟁의 계급적 성격을 흐리고, ‘사회를 인정하자’는 무의미한 말을 늘어놓으며 이 투쟁을 약화시키고,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를 하찮은 개혁주의 경향으로 격하시키려” 했다고 썼다.

  • 1
  • 2
  • 3
  • 4
  • 5
닫기
x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