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3호 2020년 3~4월호)

지난 호

특집 2:좌파가 저지를 수 있는 오류들

사회주의 정치는 선전으로 환원될 수 없다

알렉스 캘리니코스 5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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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김종환, 차승일 / 감수: 최일붕

‘정치’하면 의회 등 국가의 일 또는 국가와 관련된 일로 축소시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공식official 정치 또는 제도권established 정치일 뿐이다. 한편, ‘정치’를 이데올로기 투쟁, 즉 선전 활동으로 축소시켜 이해하는 경우도 많다. 후자의 의미로 ‘정치’를 강조하는 경향을 선전주의라고 한다.
마르크스주의에 바탕을 둔 사회주의 정치는 권력(국가 권력은 그 일부일 뿐이다)을 획득하고 사용하기 위한 활동 일체(선전 활동은 그 일부일 뿐이다)를 정치로 이해한다. 이렇게 본다면, 노동자들의 일상적 경제투쟁에 동참하는 것이 사회주의 정치와 접맥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캘리니코스는 정치에 대한 이런 확장된 이해를 사회주의자들에게 촉구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흔히 말하듯 실천 활동 길잡이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에게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노동자 중 소수조차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길잡이 구실을 받아들일 태세가 돼 있지 않은 조건에서 활동한다는 것이다. 이 조건은 영국에서도 오랫동안 존재했다. 영국은 역사유물론의 창시자들[마르크스와 엥겔스]이 정치 활동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인데도 그들의 사상에 대한 반감이 유럽의 주요 나라 가운데 가장 큰 곳이기도 하다. 나는 이 글에서 그런 상황이 벌어진 이유를 다루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이 영국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미친 영향을 다루고자 한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영향력이 노동계급의 극소수에게만 한정되는 상황에서 마르크스주의 조직들은 교조적 종파가 되기 십상이다. 특히, 자본주의에서 계급투쟁이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으로 나뉘는 내재적 경향 때문에 그러기가 더 쉽다. 이런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분리를 토대로 개혁주의가 싹튼다. 개혁주의는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특히 경제 영역에서)하려 하지만, 자본가 계급의 지배 자체에 도전하는 것은 일절 회피한다.

이런 개혁주의 관료의 행태와 대칭을 이루는 사회주의자들이 일부 있다. 방금 앞에서 말했듯이 노동계급의 일상 투쟁이 대체로 정치와 경제를 분리된 것으로 전제한다는 이유로, 노동자 일상 투쟁에 개입하는 것을 깔보는 경향이다. 이런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인즉 이렇다. 특히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사회에 통합돼 변질했으므로 혁명적 전략을 효과적으로 추구하려면 노동조합 바깥에서 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이러저러한 일부 측면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전체와 대결하는 것이 혁명적 전략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노동자 대중이 자본주의적 사상과 단절하기 전까지는, 대중 투쟁이 지배계급에 맞선 만만찮은 도전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따라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패퇴시킬 방편으로써 사회주의적 사상을 선전하는 일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이 과업을 완수하기도 전에 자잘한 투쟁에 개입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 아니라 오히려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사회를 받아들이는 성향과 정치·경제의 분리 경향을 혁명가들이 강화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선전주의라고 부르고자 하는 이런 경향은 특히 영국에서 영향력이 강하다. 영국에서는 혁명적 좌파가 비교적 약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에서 여러 형태의 선전주의가 마르크스주의 전통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 주고자 한다. 또한 혁명가뿐 아니라 개혁주의자도 선전주의 경향을 보일 수 있음을 드러낼 것이다.

마르크스·엥겔스와 공상적 사회주의

마르크스·엥겔스와 걸출한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샤를 푸리에, 로버트 오언, 1840년대 프랑스 공산주의자들)의 관계 문제는 매우 복잡하므로 이 글에서 충분히 다루기는 힘들다. 헤겔의 훌륭한 제자들답게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미래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의 청사진과 기존 현실을 대립시키는 것을 헛수고로 보고 거부했다. 그런 모델은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가 어떤 조건에서 가능할지를 무시한 채 제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부르주아 문명을 도덕적으로 비판하는 것보다 더 유익한 일일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내가 다루려는 문제와 관련해 이것이 핵심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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