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17호 2016년 12월)

지난 호

트로츠키의 전환 강령: 그 활용과 오용

앨런 마이어스 10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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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21> 편집팀] 한때의 혁명가들이 트로츠키의 전환 강령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중간주의적·개혁주의적 실천을 혁명적인 양 포장하는 일이 있었다. 이는 오늘날 한국에서도 볼 수 있다. ‘전환 강령’은 국내에서는 ‘이행기 강령’이라고도 번역된다. 이 글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극좌파 조직이었던 Democratic Socialist Party (이하 DSP)가 중간주의 단체 Socialist Alliance (이하 SA)를 주도적으로 결성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우경화 논쟁을 다룬 것이다. 당시 DSP 내 다수파였고 오늘날 SA 지도부의 일원이 된 사람들은 혁명가들이 대중의 의식에 다가가려면 그런 방향 전환이 필수적이고 트로츠키도 비슷한 취지로 전환 강령을 제기했으니 만큼 자신들의 행보는 우경화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글의 필자를 비롯한 DSP 소수파는 그런 식의 설명이 트로츠키의 전환 강령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것이고 SA로의 전환은 청산주의라고 반박했다. 나중에 DSP 소수파는 제명됐고, 제명된 이들은 그 뒤 오스트레일리아의 또 다른 극좌파 단체이자 미국 ISO에 친화적인 Socialist Alternative (이하 소셜리스트얼터너티브)와 조직을 통합했다. 이 논문은 소셜리스트얼터너티브의 이론지 《맑시스트 레프트 리뷰》 2014년 여름호에 실렸다. [ ] 안의 내용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추가한 것이다.

출처 : Allen Myers, ‘Trotsky's transitional program: its uses and abuses’, Marxist Left Review(Summer 2014)

번역: 이정구

이 글은 세기의 전환기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큰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이었던 ‘민주적 사회주의당’(Democratic Socialist Party; 이하 DSP)이 지난 10년 동안에 사라진 이유를 가능한 한 풍부하게 규명하려는 노력에서 비롯했다. 그 정당은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데도 사회주의동맹(Socialist Alliance; 이하 SA)이라는 “광범한 좌파 정당”을 건설하려는 잘못된 시도를 고집하는 바람에 사라지게 됐는데, 이 글에서 그것 자체를 다루지는 않겠다. 이 글은 DSP가 사라지는 문제에서는 부차적이었지만 여전히 중요한 문제, 즉 이른바 ‘전환적 요구’(transitional demands) 개념2에 대한 심각한 오해와 이 오해가 오늘날 혁명적 활동에 끼치는 영향을 다룰 것이다. 2005~08년에 벌어진 DSP 내부 논쟁은 과거지사가 됐지만, 전환적 요구를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사회주의자들의 실천과 여전히 관련이 있다.

DSP 내부 논쟁에서 소수파의 주요 주장 중 하나는 SA를 만들기로 한 것 때문에 다수파가 DSP의 강령을 개혁주의 방향으로 수정했다는 것이다. 이 제기에 다수파는 전환적 요구들, 즉 전환 강령으로 널리 알려진 글에서 레온 트로츠키가 주장한 것과 비슷한 종류의 요구들을 통해 기존 DSP 강령의 핵심을 반영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다수파는 2007년 4월 전국위원회 회의의 당 건설 논쟁을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이번 전국위원회에서 소수파는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전환적 방식으로 제기하는 것을 좌파 개혁주의라고 일축했다.”3 그리고 같은 해 9월에 열린 전국위원회에서는 이렇게 주장했다. “SA를 ‘사회민주주의적[개혁주의적] 잡탕’이라고 폄하해선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SA가 내세운 전환적 선거공약의 진가를 파악하고 그것을 노동자의 정치 학교로 여겨야 한다.”4

이를 보면 요구나 강령이 전환적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방식이 [다수파와 소수파 사이에]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차이를 알려면 “전환적 요구들”이 제기된 역사적 맥락을 살피는 것이 도움이 된다. 도대체 왜 그런 게 필요한 것일까? 어차피 노동자 계급과 그 동맹 세력들의 이익을 위해 싸울 거라면, 노동자들의 처우에 관한 쟁점이 떠오르거나 노동자들이 그런 쟁점을 제기할 때 그저 닥치는 대로 싸우고 그러다가 자본가와 그들의 정부를 패퇴시키면 그만인 거 아닐까? 그저 당면한 현실에서 시작해서 자본가들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싸우면 그만인 거 아닐까?

충분히 짐작했겠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는 개혁주의 때문이다. 개혁주의는 우리 계급의 이익을 위한 일련의 투쟁들을 작위적으로 두 부류로 나눈다. 개혁주의는 체제 내에 머무는 투쟁은 “정당한” 것이라 간주하지만 자본주의를 전복하려는 투쟁은 “정당하지 않다”거나, 먼 미래에는 어떻게 될진 몰라도 중단기적으로는 “비현실적”인 것으로 본다. 역사적으로 개혁주의자들은 자본주의 하에서 성취할 수 있는 개혁, 즉 “최소 강령”에 집중하고,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최대 강령”은 기약 없는 미래의 과제로 떠넘겼다.

마르크스주의적 혁명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최소강령과 최대강령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통합하는 것이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소책자 《개혁이냐 혁명이냐》에서 이렇게 썼다. “사회민주주의[당시에는 ‘혁명적 사회주의’라는 뜻으로 쓰였다]에서는 사회 개혁과 혁명 사이에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개혁을 위한 투쟁은 그 수단이고, 사회혁명은 그 목적이다.”5 이와 비슷하게, 레닌이 “러시아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 사이에 만리장성은 없다”고 말했을 때,6 그는 최소강령과 최대강령의 분리는 순전히 이데올로기적인 것이지 사회적 필요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는 것이었다. 트로츠키의 《전환 강령》도 개혁과 혁명 사이의 “간극”에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로 제기된 것임은 자명하다. 트로츠키와 레닌이 이 문제에 관해 말한 것을 살펴보고, 그런 다음 오늘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이것을 어떻게 적용할지를 검토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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