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0호 2017년 5~6월)

지난 호

특집: 러시아 혁명 100주년

러시아 혁명과 여성해방

김은영 11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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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 년 전 1917년 3월 8일(러시아 구력으로는 2월 23일), 세계 여성의 날에 러시아 페트로그라드 여성 노동자들이 2월 혁명을 촉발했다.

그들은 이것을 여성들만의 투쟁으로 보지 않았다. 대표자를 선출해 지지 호소문을 들고 남성들이 있는 이웃 공장을 돌면서 파업에 동참하라고 촉구했다. 그들은 남성 노동자들과 함께 “빵을 달라”, “차르를 타도하자”, “전쟁을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파업과 시위를 벌였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진압하러 온 사병들과 친교를 맺고, 상관의 명령에 불복해 발포를 멈추라고 사병들을 설득했다. 수십만 명이 파업에 들어갔고 많은 부대들이 노동자 편에 서기 시작했다. 결국 차르는 폐위됐다.

당시 러시아 여성들은 지위가 매우 낮았다. 1861년 농노제가 폐지돼 땅이 없는 농민들이 일자리를 구하려고 도시로 몰려와서 노동자가 됐다.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 노동자의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며 매일 13~14시간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해고당하지 않으려고 마지막 순간까지 임신 사실을 숨겼고 아이를 낳은 바로 다음 날에도 일을 나가곤 했다. 직장에서 성차별주의는 용인됐고, 여성은 공공연히 남편과 아버지의 소유물로 취급됐다. 농촌 지역에서는 결혼식 날 신부의 아버지가 신랑에게 아내를 다스릴 채찍을 넘겨주는 것이 관습이었다.

여성 노동자들은 온갖 멸시와 천대 속에서도 1890년대 대파업과 1905년 혁명기, 1913∼14년 대규모 파업 등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1905년 혁명기에 여성 노동자들은 산전·후 휴가와 수유시간 보장, 직장 내 성희롱 금지 같은 요구들을 내세우며 투쟁했다. 1905년 혁명 기간에 여성들은 거리 곳곳에서 출산의 권리와 탁아소 같은 이슈에 관해 토론했다. 스스로를 조직하고 투쟁하면서 여성들은 천성적으로 수동적이고 후진적이라는 뿌리 깊은 편견에 맞섰다. 사회의 여성 이미지는 변하기 시작했다.

여성 노동자 수는 1차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빠르게 증가했다. 전쟁이 시작할 무렵 여성 노동자들은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이었는데 1917년에는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1917년 2월 혁명으로 차르가 폐위되고 자본가들의 임시정부와 노동자·농민들의 소비에트 체제가 공존하는 이중(이원)권력 상태가 지속됐다. 임시정부는 여성들의 삶과 고통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계속되는 전쟁과 경제 침체, 물가인상, 식량 부족 등으로 상황은 날로 악화했다. 식량을 구하려고 날마다 가게 앞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임시정부에 대한 불만은 높아졌고 고용주들에 맞선 투쟁은 여성 노동자들을 급진화시켰다. 혁명 과정에서 남성의 성차별적 의식도 도전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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