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1호 2019년 7~10월호)

지난 호

쟁점: 현재의 이슈들

서평 《우먼스플레인》, 《그 페미니즘이 당신을 불행하게 하는 이유》 ─ 급진 페미니즘의 과도함에 대한 예리한 지적

최미진 9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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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분은 차별 반대 운동 내에서 영향력이 큰 정체성 정치도 비판한다. 그는 노동계급 공통의 덕목을 중시했던 과거 좌파의 전통에 향수를 표하며 좌파가 “계급성”을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의 정체성 정치 비판의 세부 내용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정체성 정치 비판과는 다소 차이점도 있지만).13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정체성 정치의 장단점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다뤘다(가령 《정체성 정치는 해방의 수단인가?》(섀런 스미스 지음, 노동자연대)). 정체성 정치는 같은 형태의 차별을 받는 개인들은 모두 단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기초로 한다. 이런 정치가 생겨난 배경에는 성별, 인종, 민족,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 종교 등에 따라 특정 집단이 체계적으로 차별 받는 자본주의 사회의 고통스런 현실이 있다. 정체성 정치는 같은 피차별 집단 내의 공통된 정의감과 분노로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그래서 정체성 정치는 차별 반대 운동의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정체성 정치는 각종 차별과 억압의 근원이 계급 사회라는 점은 놓치게 만드는 난점이 있어, 차별 폐지로 나아가는 데 한계를 드러낸다. 또한 노동계급을 각종 ‘정체성’으로 갈라놓아, 계급 공통의 이해관계와 그에 기초한 연대를 구축하기 어렵게 만드는 파편화의 위험이 있다. 동시에, 정체성 정치는 같은 피차별 집단 내에서는 계급을 가로질러 협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계급에 따라 차별의 정도가 판이할 뿐 아니라, 차별에 맞설 이해관계가 다른데도 말이다. 지배계급의 일원이 어떤 차별을 받든 우리는 차별에 맞서 그를 방어해야 하지만, 그들에게는 구조적 차별을 통해 얻는 계급적 이득(노동계급에 대한 이간질과 이를 통한 각개격파, 효과적 착취)이 비할 바 없이 더 중요하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14

‘피해자 중심주의’와 ‘성인지 감수성’

두 책의 저자들은 성범죄와 관련한 급진 페미니즘의 과도함과 부작용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특히, 박가분은 무책임한 ‘성폭력’ 피해호소와 성급한 낙인 찍기로 삶이 망가진 당사자들을 심층 인터뷰했다.(‘성범죄자 누명 벗은 박진성 시인 ― “가장 악질은 〈한국일보〉와 탁수정”,  ‘잘못 운영된 ‘인권’ 제도는 어떻게 ‘괴물’이 됐나’[고故 송경진 교사 자살 사건], ‘SJ레스토랑 사건,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가’)

박가분은 이를 통해 무분별한 ‘성폭력’ 폭로의 위험성과 교훈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또한 섣불리 성범죄자라는 주홍글씨를 새기지만 정작 진실에는 관심 없고 심지어 사실이 드러나도 책임지지 않는 진보·좌파 일각의 풍토를 비판한다. 이 책에 나온 사례를 읽다 보면, 사실 검증 없이 피해호소인의 말만으로 유죄를 단정하고 사실의 입증이나 합리적 문제제기조차 봉쇄하는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가해’(‘2차피해’) 관행이 각 사례에서 문제가 됐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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