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1호 2019년 7~10월호)

지난 호

쟁점: 현재의 이슈들

서평 《우먼스플레인》, 《그 페미니즘이 당신을 불행하게 하는 이유》 ─ 급진 페미니즘의 과도함에 대한 예리한 지적

최미진 9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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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옥의 지적처럼, ‘성인지 감수성’은 정의가 명확한 법률용어는 아니다.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대체로 사회에서 불거지는 여러 문제에 대해 성차별적인 요소를 찾아내는 민감성을 가리키는 의미로 통용된다. 대법원은 양성평등기본법을 근거로 ‘성인지 감수성’을 언급했지만, 양성평등기본법 역시 ‘국가기관 등은 양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당위를 명시했을 뿐이다. 

물론 이런 개념이 애초에 도입된 이해할 만한 사회적 배경은 있다. 사법부는 성범죄에 대한 성차별적이고 보수적인 잣대를 들이대어 여성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린 전력이 많다. 가령 저항이 현저히 곤란한 폭행과 협박이 있어야만 성폭력으로 인정되는 ‘최협의설’이 이전까지 통용돼 왔다. 또한 기계적이고 보수적인 피해자 상을 정해 놓고 그에 맞지 않으면 성급하게 ‘피해자답지 않다’고 단정하거나, 사건과 무관한 고소 여성의 행실 따위를 문제 삼아 그 여성에 대한 편견을 조장해 온 어두운 역사가 있다. 그런 성차별적 관행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여성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런 보수적 관행에 반대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고, 관련 법·제도 개선을 지지해야 한다.

하지만 이선옥의 주장처럼,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단지 사회운동의 구호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 사법 재판의 근거로 도입하게 될 때는 만만찮은 부작용이 우려된다. 특히, 여성운동 일각에서는 ‘진술이 엇갈릴 때는 고소 여성의 진술을 우선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 개념을 사용하거나, 이를 근거로 성범죄 고소 여성의 진술 신빙성을 평가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기도 한다. 이는 ‘성범죄 이후의 반응은 여성마다 다 다르므로 피해자다움이란 없다’는 주장과도 상통한다.

하지만 성범죄 고소 여성의 진술이나 사건과 관련 있는 이후 행적 등에서 그 진술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증거가 있다면 이를 간과해선 안 된다. 여성의 진술을 뒷받침할 증거(당사자들과 참고인들의 진술, 정황, 물증 등)와 여성 진술의 일관성, 정합성, 남김없이 진술하는지 등도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이를 거부하는 것은 사건의 실체 파악을 어렵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 되면 무고한 사람이 성범죄자로 낙인 찍히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16 최성호 경희대 철학과 교수가 쓴 신간 《피해자다움이란 무엇인가》는 이 복잡다단하고 균형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 합리적 기준점을 제시하고 있어 참고할 만하다.17

‘성인지 감수성’ 개념의 느슨함과 모호함은 당사자 진술 외에 증거가 불충분하거나 회색지대가 있는 성범죄 재판에서 특히 문제의 소지가 커진다. 증거의 뒷받침이 없거나 부족할 때 고소 여성의 진술에 손들어 줘야 한다는 결론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곰탕집 사건’ 판결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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