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1호 2019년 7~10월호)

지난 호

쟁점: 현재의 이슈들

서평 《우먼스플레인》, 《그 페미니즘이 당신을 불행하게 하는 이유》 ─ 급진 페미니즘의 과도함에 대한 예리한 지적

최미진 9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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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렇게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비교적 소수일 수 있다. (중범죄일 경우에는 극소수일 테지만 경미한 범죄일 경우에는 상당한 소수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한 고 송경진 교사의 사례처럼, 잘못 새겨진 성범죄자 낙인은 엄청난 고통을 안겨 준다는 점을 무시해선 안 된다. 게다가 국가기구의 형벌권 행사는 전과가 남아 낙인 효과가 매우 크고, 피고인의 생계에도 큰 지장을 주며, 그 가족에까지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오판의 가능성을 더더욱 경계해야 한다. 

한편 이선옥은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를 안희정 재판에도 적용한다. 특히 여성단체들이 ‘위력의 존재가 곧 행사’라며, 1심 재판부가 그 둘을 구분한 것 자체를 ‘성인지 감수성 없다’고 규탄한 것을 비판한다. 이 지적은 일리 있다. 위계 관계에 있는 유력 인사와 그의 비서 사이에도 연인 관계나 합의에 의한 성관계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력의 행사 여부는 사건마다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이 자체를 거부하는 일각의 견해는 기계적이다.

하지만 이선옥이 안희정 1심 재판부의 성폭력 무죄 판결을 두둔한 것은 안희정에게 불리한 정황 증거들을 간과한 듯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선옥은 고소여성 김지은 씨의 문자 메시지(성폭행을 당했다는 시점 이후에 지인에게 안희정에 대한 존경과 애착을 나타낸 문자를 뜻하는 듯) 등이 그의 진술의 신빙성을 크게 떨어뜨린다고 보는 듯하다. 분명 해당 문자 메시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판결 전문을 살펴보면, 안희정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가 위계 성폭력에 대해 지나치게 보수적 잣대를 적용한 문제점이 발견된다. 성관계에 위력이 작용했음직한 정황들이 여럿 있어 안희정의 결백을 단정할 수는 없다.18 또한 1심 판결을 뒤집은 2심 재판부가 ‘성인지 감수성’만으로 유죄 판결을 내린 게 아니라는 점도 봐야 한다. 2심 재판부는 ‘성인지 감수성’을 언급함과 동시에, ‘유죄의 인정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는 증거주의 원칙도 판단 근거로 삼았다. 

그밖에, 성범죄 관련 제도나 법안들(성범죄 무고죄 수사 유예 지침, 비동의 간음죄 신설 등)에 대한 이선옥의 구체적 주장에도 다소 난점이 있다.19 하지만 증거주의를 무시한 급진 페미니즘의 주관주의적 성범죄 개념을 법적으로 도입하는 것에 대한 이선옥의 예리한 경고는 진보·좌파가 귀담아 들어야 하는 부분이다. 이선옥도 언급했듯, ‘성범죄에선 유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해도 된다’는 박노자 교수 식의 ‘피해자 중심주의’가 곳곳에서 부작용을 일으켜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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