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1호 2019년 7~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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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현재의 이슈들

서평 《우먼스플레인》, 《그 페미니즘이 당신을 불행하게 하는 이유》 ─ 급진 페미니즘의 과도함에 대한 예리한 지적

최미진 9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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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TV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두고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여혐 드라마’라고 비난한 일은 이선옥이 주목한 또 다른 사례다. 드라마 내용이 공개되기도 전에 20대 여성과 40대 남성이 사귈 거라 넘겨짚으며 그런 설정 자체에 불쾌감을 쏟아낸 것이다(‘왜 20대 여성이 40대 남자를 위로해야 하냐’는 것).

하지만 정작 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은 연인이 아니었고, 오히려 극빈층 가족의 고달픈 현실과 계약직 노동자의 설움을 다루어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설사 젊은 여성과 중년 남성의 연애를 다뤘다 해도 그게 왜 비난거리가 되는지는 의문이다. 이런 반응은 급진 페미니즘 일각에서 종종 나타나는 불필요한 반발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이선옥과 박가분은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종종 휘두르는 ‘정치적 올바름’ 문제도 제기한다. 차별적 함의나 의도가 없는 대중 문화와 사소한 농담에까지 작위적 잣대를 적용해 대중을 훈계하고 이런 행위들에서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찾는 관행은 역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특히, 문화·예술 창작자들이 불필요한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들어 창작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

이선옥은 다음과 같은 유물론적 지적도 추가한다. “사회적 지위를 평등하게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이 약자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지, 대중문화와 예술이 사람을 표현하는 방식 때문에 약자가 불행한 게 아니[다].” 

서평자가 보기에 이선옥의 이런 통찰은 마르크스주의 언어관과도 맞닿는 부분이 있다.9 유물론자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차별 받는 집단을 비하하는 언어(“깜둥이”, “변태”, “계집년” 등)에 반대한다. 하지만 언어 때문에 차별이 생기는 게 아니라, 차별의 물질적 현실이 존재하기에 차별적 언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차별의 증상에만 집착해 개인들의 라이프스타일 공격하기를 주된 실천으로 삼기보다는, 차별을 낳는 물질적 근원(개별 가족에 떠넘겨진 양육·돌봄 부담, 계급 불평등과 착취)에 도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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