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1호 2019년 7~10월호)

지난 호

특집: 동유럽 민주주의 혁명과 신중국 초기 노동자 투쟁

동유럽 민주주의 혁명 30년 ─ 국가자본주의 체제 붕괴의 교훈

정선영 9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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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지배자들은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군대 투입을 준비했고, 폴란드 국경에 소련군을 배치하며 위협했다. 그러나 소련은 이번에는 군대를 투입하지 못했다. 폴란드는 동유럽에서 가장 큰 나라인데다, 저항의 수준이 너무 높았고, 군대를 투입했을 때 기층 군인들이 이반할 위험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심각한 위기에 빠졌고 연대노조는 사실상 정부에 맞선 대안적 권력 기구 구실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상황에서 연대노조의 지도부는 정부와 협상을 추구하며 자중지란에 빠졌다. 그 핵심적인 이유는 연대노조 지도부가 작업장에서는 매우 전투적으로 싸웠지만 운동이 나아가야 할 정치적 대안을 제시하는 측면에서는 약점이 컸기 때문이다.

이는 고전적인 신디컬리즘(노동자들의 문제는 국가 권력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고도 노동조합 조직을 강력하게 건설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의 한계를 보여 주는 사례였다.19 신디컬리스트들은 전투적으로 투쟁할 수 있지만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의 대안을 건설하려는 준비가 돼 있지 못하다. 1919년 영국의 노조 지도부나, 1936년 스페인 혁명 당시의 전국노동조합총연맹CNT의 지도부도 권력 장악을 회피하고 부르주아 권력을 유지시켜 주는 구실을 했다. 당시 폴란드에서는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이라는 문제가 당면한 선택지에 놓여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연대노조를 소비에트와 같은 기구로 발전시키며 국가 타도를 위한 봉기를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때 지도부는 방향 감각을 상실해 버린 것이다. 당시 폴란드에서 운동을 더욱 발전시키려면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는 목적 의식이 분명한 볼셰비키와 같은 혁명적 조직이 필요했다.

연대노조는 15개월 동안 폴란드 사회를 뒤흔들었지만, 결국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폭력적으로 연대노조를 해산하고, 계엄 통치를 벌였다. 그럼에도 정부는 지하에서 활동을 이어가는 연대노조 활동가들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또 그 운동을 성장시킨 기저의 동인들도 제거할 수 없었다. 폴란드 연대노조의 도전은 동구권 전체에 큰 파문을 던졌다.

페레스트로이카, 글라스노스트

폴란드 연대노조 운동은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위로부터 개혁을 추진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고르바초프는 1985년 집권했다. 그의 집권은 전 서기장이었던 안드로포프의 도움이 컸다. 안드로포프는 1956년에 헝가리 대사를 지냈고 1980~1981년 폴란드에서 소련 공산당의 국가보안위원회KGB 위원장을 지내면서 경제 위기 때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목격했다. 안드로포프처럼 고르바초프도 폴란드 같은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위기가 벌어지기 전에 위로부터 개혁을 통해 체제를 구하고 싶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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