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1호 2019년 7~10월호)

지난 호

특집: 동유럽 민주주의 혁명과 신중국 초기 노동자 투쟁

동유럽 민주주의 혁명 30년 ─ 국가자본주의 체제 붕괴의 교훈

정선영 9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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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처음에 고르바초프의 개혁 정책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저항이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고르바초프는 파업 금지 법안을 발의하는 등 억압적 본질을 드러냈다. 기대는 환멸로 바뀌어 갔다. 이런 상황에서 소련은 1989년 벌어진 동유럽 정부들의 격변에 개입할 여력이 없었다.

1989년: 동유럽의 일당 독재가 무너진 해

1989년 6월 4일은 상징적인 날이었다. 그날 중국 정부는 톈안먼에 탱크를 보내 학생, 노동자 수천 명을 학살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에 모종의 기대를 가졌던 학생과 노동자들이 5월 14일 고르바초프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개혁을 요구하며 톈안먼에서 단식 농성을 시작했고, 시위는 완강하게 이어졌다. 중국 정부는 이를 잔혹하게 짓밟았다.

그러나 동유럽의 스탈린주의 정부들은 중국과 같은 방식을 택할 수 없었다. 중국처럼 하기에는 동유럽 정부들의 힘이 너무 약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날 폴란드에서는 선거가 벌어졌고 연대노조 “바웬사의 후보들”이 투표에서 압승을 거뒀다.

변화는 1988년 봄과 여름 두 번의 파업 물결에서 시작했다. 당시 폴란드의 광부들은 지하 600미터 광산 점거 투쟁을 벌였다. 광산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메탄가스 폭발 위험이 컸지만 노동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22 1988년 파업은 1980~1981년만큼 강력하게 확산되지는 않았지만, 폴란드 지배층 내에서는 이 파업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둘러싸고 큰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지배층은 연대노조 전국 지도부가 노동자들에게 파업을 중지하도록 호소하는 것을 대가로 반대파와 원탁회의를 하기로 했다. 기층의 활동가들 중에는 노동자 투쟁을 중시하며 연대노조가 원탁회의에 참가하는 것에 비판적인 전투적 투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세력은 충분히 강력하지 못했고, 민족주의적이고 친 시장적인 방향에 기울어 있었던 연대노조 지도부는 지배계급과 협조하며 지배자들이 옆걸음질 칠 공간을 열어 줬다.

원탁회의에서 민주적 권리를 확대하려는 조처가 결정됐고, 반쯤 자유로운 선거에 대한 합의도 이뤄졌다. 그러나 연대노조는 노조 측 자문위원이 IMF와 협정을 거쳐 명령 경제를 개혁하고 광범한 사유화를 실시할 정부의 총리가 돼야 한다는 데도 합의했다. 폴란드 지배계급은 일부 권력을 양보했지만 기업, 경찰, 군대와 같은 핵심적인 부분은 전과 같은 사람들이 운영했다. 연대노조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던 기자들이 복직했지만, 신문사와 방송국에서 그 밖의 인사 상 변화는 거의 없었다. 권위적 일당 독재는 끝났고 노조를 결성할 권리 등 민주적 권리들은 확대됐다. 이는 분명 작은 성과가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옛 노멘클라투라[특권층]들은 기업의 경영자로 자리를 옮기며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이어갔다. 거의 비슷한 변화들이 다른 나라들에서도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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