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1호 2019년 7~10월호)

지난 호

특집: 동유럽 민주주의 혁명과 신중국 초기 노동자 투쟁

동유럽 민주주의 혁명 30년 ─ 국가자본주의 체제 붕괴의 교훈

정선영 9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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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대중 운동, 미완의 혁명

1989년 동유럽에서 벌어진 일들을 두고 당시 좌파 내에서는 서방의 개입에 따른 친서구 자본주의적 시위로 치부하는 경향이 많았다. 얼마 전 민중당이 올해 벌어지고 있는 홍콩 시위가 미국의 지원에 힘입은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듯 말이다.

그러나 서방 지배계급은 동구권 체제의 위기를 서방 체제의 우월성 선전을 위해 이용하려 했을 뿐, 진정한 대중 투쟁이 성장하는 데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미국은 톈안먼 광장에서 대학살이 벌어지던 그 날에도 중국 공산당과 긴밀한 협조 관계를 멈추지 않았다.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정부는 시오니즘 국가 이스라엘과 아주 긴밀하게 협력했고, 동독의 권위주의적 통치자 호네커도 서독 제국주의로부터 막대한 원조를 받았다.

당시 동유럽 시위 참가자들 중에도 이런 비판을 한 활동가들이 있었다. “미국 정부는 1940년대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게릴라들에게도, 헝가리 혁명의 투사들에게도 무기를 공급하지 않았다. 헝가리 혁명을 연구한 영국의 우익 역사가 데이빗 어빙은 이 점을 충분히 밝히고 있다. 오늘날 〈워싱턴 포스트〉 지는 로널드 레이건이 [1981년 폴란드 군부의] 쿠데타가 발생하기 한 달 전에 폴란드 관료 집단이 연대노조에 대한 반격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개인적으로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 정부는 연대노조 지도부에게 경고하지 않았다.”23

동유럽 노동자와 민중의 투쟁은 노동자·민중을 착취·억압해 온 국가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진정한 아래로부터 대중 투쟁이었다. 경쟁적 축적 과정에서 벌어졌던 체제의 위기와 임금 인상, 처우 개선, 민주주의 확대 등을 요구한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분출하는 과정은 동구권 사회들이 사회주의와는 아무 관련 없는 자본주의였다는 것을 무엇보다 분명히 드러냈다.

동유럽의 저항을 폄하하는 사람들 중에는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의 의식을 근거로 그렇게 보는 경향이 있다. 시위대 중 다수가 옛 지령 경제에 대한 대안으로 시장 도입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난생 처음 대중 운동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온갖 모순적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거의 모든 대중 운동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일이다. 1987년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노동자 대투쟁도 결국은 조금 더 민주적인 자본주의를 요구하는 운동이었고, 2016~2017년 박근혜 퇴진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1989년 당시 소위 사회주의라고 불리던 사회에서 극심한 불평등과 억압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서방 자본주의에 모종의 환상을 가지며 민주주의 확대를 요구한 것은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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