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1호 2019년 7~10월호)

지난 호

특집: 동유럽 민주주의 혁명과 신중국 초기 노동자 투쟁

동유럽 민주주의 혁명 30년 ─ 국가자본주의 체제 붕괴의 교훈

정선영 9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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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중의 모순된 의식은 운동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경험을 통해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1905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시작된 계기도 전제 군주였던 차르에게 기대를 가지고 청원하러 가던 대중 시위였다. 1989년에도 고르바초프의 개혁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고르비”(고르바초프의 애칭)를 외치며 거리에 나왔던 사람들이 금새 고르바초프에게 환멸을 느꼈다. 시장이 불평등과 빈곤을 해결할 대안이 아니라는 사실도 투쟁 과정에서 더 빨리 깨칠 가능성이 있었다. 대중의 의식을 탓하며 운동과 거리를 둔다면 오히려 더 온건한 세력에게 운동의 지도권을 내맡기게 될 뿐이다.

1989년 동유럽의 노동자·민중이 이룬 성과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1987년 운동의 성과를 소중히 여기듯, 자유 선거와 노동조합 결성 권리 등 제한적일지라도 민주적 권리들이 확대된 것은 중요한 성과이다. 그럼에도 당시 운동이 가장 발전한 곳에서도 구 정부를 붕괴시키는 ‘정치혁명’은 있었지만 진정으로 자본주의를 분쇄하는 사회혁명은 벌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사회 전체의 진정한 권력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고, 구 체제의 권력자들은 사기업의 사장이 돼 계속 노동자들을 착취했다.

즉, 혁명이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이 시기에 일어난 거대한 정치적 변화는 분명 계급 투쟁을 통해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빗나간 계급 투쟁으로서, 노동자평의회 같은 피착취 계급의 민주적인 대중 조직들을 창출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1989~1991년 격변의 잠재력은 컸지만 온갖 정치적 혼란 와중에 노동자 권력의 그림자조차 용납하지 않으려고 작심한 사람들에게 운동의 지도권이 돌아갔기 때문이다. 바로 옛 지배 관료들의 틈바구니에서 출세한 사람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제한된 개혁 강령을 내세워 반대파 지식인들과 연합했고, 그렇게 선수를 침으로써 진정한 혁명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24

따라서 당시 동유럽에서 개혁주의적 지도부가 운동을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가지 못하도록 하려면 진정한 혁명적 지도력이 필요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48년 유럽의 혁명적 격변을 거치며 1850년에 이렇게 쓴 바 있다.

혁명적 노동자 당과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과의 관계는 이렇다 : 혁명적 노동자당은 타도해야 할 분파들에 맞서서 그들(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공고히 하려 하는 모든 것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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