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1호 2019년 7~10월호)

지난 호

서평

《임금 노동과 자본》, 《임금, 가격, 이윤》 카를 마르크스 ─ 모든 임금 인상 투쟁을 방어하며

김재헌 7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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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력이라는 상품은 자본가들에게 특별한 상품이다. 자본가의 소유가 된 노동력은 자본가의 통제에 따라 노동력의 가치보다 더 많은 것을 생산하는 데 쓰인다. 이것이 다른 상품과 구분되는 노동력의 “독특한” 성격이다. 기계나 원료와 같은 생산수단들은 그것이 가진 가치보다 더 많은 것을 만들어 낼 수 없고 자신의 가치를 새 상품에 그대로 이전할 뿐이다. 그러나 노동력이라는 상품은 이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량 이상으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루 8시간 노동 중 4시간이 노동력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이라면, 나머지 4시간은 그 이상의 가치를 생산하는 잉여 노동시간이 된다. 이 부분이 자본가가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노동자들로부터 착취하는 잉여가치로서 이윤의 원천이 된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노동자는 생산수단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자본가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노동력의 가치 이상을 생산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이렇게 노동력은 생산과정에서 소비됨으로써 자신의 가치인 임금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자본가를 위한 이윤도 함께 만들어 낸다. 즉 노동자가 만들어낸 전체 가치가 임금과 이윤으로 나뉘어진다. 그런데 노동자가 새로 만들어 낸 전체 가치의 규모는 정해져 있다. “그러면 임금과 이윤의 상호 연관에서 그것들의 하락과 상승을 결정하는 일반적 법칙은 무엇인가? 임금과 이윤은 반비례한다. 자본의 몫인 이윤은 노동의 몫인 하루 임금이 하락하는 것과 똑같은 비율로 상승하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윤은 임금이 하락하는 정도로 상승하며, 임금이 상승하는 정도로 하락한다.”(《임금 노동과 자본》)

그래서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은 노동력이 만들어낸 가치를 두고 더 많은 몫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야 하는 운명적 관계다. 노동력의 가치는 가변적이며 “자본가는 끊임없이 임금을 노동자의 육체적 최소까지 감축하려는 경향이 있는 반면, 노동자는 끊임없이 반대 방향으로 압력을 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결국 투쟁하는 각각의 힘의 문제로 귀착한다.”(《임금, 가격, 이윤》)

임금 인상 투쟁

그러면 지금과 같이 경제 위기가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임금 인상은 자제해야 하나? 아니면 자본가 계급의 이윤을 압박하더라도 더 많은 임금을 쟁취해야 하나?

박준형 씨는 노동자 운동이 “노동자 계급의 국민경제의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벌 대기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투쟁의 성과로 정규직화되는 것은 상위 10퍼센트 임금 노동자를 조금 늘리는 것에 지나지 않아 “계급적 단결과는 거리가 있다”고 하니 이런 건 그에게 대안이 아니다. 그는 노동자들이 “국민경제 붕괴의 위기에” 애써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고 훈계한다. 임금 인상과 같은 “방어적 경제투쟁으로는 국민경제의 붕괴를 막을 수 없고, 결국 애초 방어하고자 했던 임금과 노동조건도 지킬 수 없다.” 이런 주장은 지배계급이 노동자들과 자본가 계급에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고,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며 노동자들의 양보와 희생을 강요하는 주장과 본질에서 같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이해 관계와 노동자의 이해 관계가 똑같다 함은 다음과 같은 것을, 즉 자본과 임금 노동은 하나이자 똑같은 관계의 두 측면이라는 것을 이를 뿐이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제약하는” 이해 관계, “이것이 그토록 찬양되고 있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이해 관계의 공통성”이라고 했다. 마르크스가 “자본 또한 하나의 사회적 생산 관계 …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임금 노동과 자본》)라고 했으니, 마르크스가 비꼰 노동자와 자본가의 공통의 이해 관계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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