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2호 2020년 1~2월호)

지난 호

쟁점:지금의 이슈들

이주, 이주노동자 그리고 자본주의

제인 하디 157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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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바르트가 지적했듯, 이주가 임금과 노동조건에 동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틀렸다. 그 효과는 부문마다, 심지어 한 부문 안에서도 다양하다.27 이는 자본들 사이의 경쟁의 정도에 따라, 기업주들이 임금 하락 압박과 숙련 노동자 고용 사이에 균형을 맞출 필요성에 따라, 노동자들이 산업 부문이나 개별 작업장에서 저항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정해질 것이다. 아일랜드 페리선 노사분규 사례28만 봐도, 개별 작업장의 고용주들이 더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일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려 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럽 전역에서 임금을 낮춰야 한다는 압력이 있다.29 2009년 1월 이탈리아·스페인 노동자들이 영국에 유입됐을 때 건설업에서 벌어진 논쟁이 이를 잘 보여줬다. 1996년에 제정된 ‘파견노동자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고용주에 의해 다른 나라에 일시적으로 “파견된” 노동자는 초청국의 법률이나 단체협약에 규정된 최저 공급 조항을 보장받아야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장들은 최저임금만 지급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이주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잘 몰랐다(그들이 “유동 숙소”에 살고 있어서 더 그랬다). 다른 나라에서 와서 영어를 잘 못하는 건설 노동자들이 영국인 사장을 영국 노동청에 재소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조건 하에서 어떻게 고용주가 노동자를 열악한 임금과 노동조건으로 고용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기는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시도의 성공 여부는 정치적 쟁투에 달려 있다. 스웨덴에서 한 학교를 리모델링할 당시 ‘알파 라발’이라는 하도급업체가 (전국적 단체협약으로 보장된) 시급 15유로보다 낮은 시급 9유로로 라트비아 노동자들을 데려왔을 때 벌어진 투쟁을 특기할 만하다.30 스웨덴 건설노조는 작업장에서 피케팅을 했고, 사장들과 라트비아 정부는 노조가 외국인을 혐오한다고 비난했다. 스웨덴 건설노조는 “스웨덴 일자리는 스웨덴 노동자에게”라고 요구하지 않았고, 라트비아의 유력 신문에 스웨덴에 오는 노동자들은 노조에 가입하라고 호소하는 성명서를 게재했다.31 즉, 이주노동자의 존재 때문에 분열 지배가 가능할 수도 있지만, 사장들이 항상 아무런 반발 없이 이주노동자들을 착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국가와 이주

세계화에 대한 많은 수사들과는 달리, 국경을 가로지르는 노동력의 유입과 유출을 관리하는 데서 국가는 중심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해 왔다. 예컨대 19세기 유럽에서 국가가 이민에 대한 규제를 풀었기 때문에 농촌 빈곤층이 대거 유출될 수 있었다. 국가 기구들, 노동조합들, 자선단체와 식민주의 단체들이 이런 유출을 재정적으로 지원했다.32

자본주의 국가가 등장하면서 국경선이 확정됐고 이주민을 별개의 집단으로 규정하는 시민권 범주가 생겨났다. 19세기 이전까지 “외국인”이 일할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는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역사회와 길드가 결정했다.33 현대 민족주의는 일부 집단들을 분리하고 다른 집단들을 통합했다. 색슨인과 바이에른인들은 자신들의 지역 정체성을 가진 채 프랑스·네덜란드·동유럽으로 이주했지만 갑자기 “독일인”으로 묶였다. 민족 정체성은 대체로 느슨하게 규정됐다. 촌락·지역·종교 정체성이 민족 정체성보다 강했기 때문이다.34 제1차세계대전 이전에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자신을 잠시 미국에 머무르는 이탈리아인·폴란드인이라고 규정하곤 했다. 오늘날 아프리카에서는 오랫동안 교역과 문화적 유대관계로 연결돼 있었지만 유럽 제국들이 인위적으로 그은 국경으로 나뉜 지역들 사이에서 “국제 이주”가 이뤄지고 있다.35

제1차세계대전 시기 근대 국가들 대부분은 국경을 넘는 이동을 통제하려 했다. 여권은 그것을 문서로 표현한 것이었고, 이런 이동을 감시하기 위한 이주 관련 관료 체계가 대폭 확대됐다.36 모종의 여권이나 여행 관련 서류는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영국과 다른 유럽 국가들은 군사적 이유나 숙련 노동자 확보 노력 때문에 1914년 무렵 근대적 의미의 여권 제도를 제정했다.37 1920년대에 대부분의 정부는 사람들의 이동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강화했다. 거베이는 이렇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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