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2호 2020년 1~2월호)

지난 호

논쟁

홍콩 항쟁을 둘러싼 한국 진보·좌파 내 논점들

이정구 21 32
343 5 3
4/6
프린트하기 전체 보기 PDF 보기

게다가 중국 정부는 홍콩 항쟁은 철저하게 진압하더라도 자본의 이윤 추구 활동은 충분히 보장해 줄 것이다. 이럴 경우 홍콩은 금융 중심지로서도 별로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있다. 1989년 톈안먼 항쟁을 유혈낭자하게 진압한 덩샤오핑도 해외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국제 자본도 수익을 위해 학살자들의 피 묻은 손을 흔쾌히 잡았다.

사실 중국 정부는 홍콩 반환 이전부터 해외 자본에 애정은 보냈다. 존스홉킨스대학 교수 훙호펑은 이렇게 지적했다. 중국공산당은 “1980년대에 홍콩에서 들어오는 해외직접투자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홍콩에서 보통선거제의 도입이 높은 세금과 재분배 조치가 취해질까 봐 걱정하는 기업주들의 이해관계를 민감하게 고려했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홍콩 기본법 초안을 만들 때 논란이 될 만한 모든 쟁점에 대해 기업 엘리트의 편을 들었고, 사회적 권리나 철저한 정치 개혁에 관한 홍콩 민주파들의 제안을 모두 무시했다.”14

레닌은 경제의 집중된 형태가 정치라고 표현했다. 중국 지도자는 홍콩 항쟁에 대응하며 경제적 이해득실도 고려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 홍콩 항쟁이 초래할 정치적 영향을 생각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 정부가 홍콩 항쟁 세력에게 밀린다면 중국 내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나 신장 위구르나 티베트 같은 소수민족,15 그리고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홍콩과 같은 일국양제의 국가인 대만에 대해서도 중국의 지위가 위협받을 수 있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홍콩 항쟁이 사그라들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시위대를 위협하고 또 캐리 람에게 강경 대응을 할 것을 압박했다.

홍콩 정체성 대 중국 정체성

12월 17일자 〈입장신문〉은 홍콩민의연구소香港民意究所가 1010명을 방문해 “당신은 자신을 뭐라고 할 것인가?”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16 여기서 홍콩인이 55퍼센트로 가장 많이 나왔고, 중국의 홍콩인이 22퍼센트, 홍콩의 중국인은 10퍼센트, 중국인이라고 답변한 사람은 11퍼센트였다. 홍콩인이라고 답변한 비중이 77퍼센트가 나왔는데, 이 신문은 이는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최대치라고 지적했다. 이 설문조사를 보면 홍콩인의 압도 다수가 스스로를 중국인이 아닌 홍콩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런 사실에 기초해 일부 사람들은 홍콩인 정체성을 갖고 이번 투쟁을 재단한다.

백석대학교 중국어학과 류영하 교수가 이런 정체성 개념으로 홍콩 항쟁을 바라보는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중국은 150여 년간 만들어진 홍콩의 영국적 정체성을 10~20년 안에 없애려 했는데, 결국 실패했다. 이러한 모습이 계속되면 이번과 같은 시위 사태는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하고 지적했다.17 그는 중국-홍콩 체제의 특징이 바로 정체성의 충돌이라고 규정했다.

닫기
x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