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2호 202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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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마르크스 캐피탈 리딩 인트로》, 에르네스트 만델, 이매진 ─ 《자본론》의 개념을 제대로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논점들

정선영 93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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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이전에도 사회의 일부에서 상품을 생산하던 사회는 많았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상품 생산이 전 자본주의 사회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상품 생산 과정이 ‘가치 법칙’의 적용을 받았다는 데 있다. 즉 자본주의에서는 다수 자본들의 시장 경쟁 과정에서 상품이 생산되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상품 생산을 위해 투입되는 가치(사회적 필요노동시간)를 끊임없이 서로 비교하며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다. 이에 따라 자본가들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기계 등의 불변자본에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이와 같은 “경쟁적 축적” 압박이 자본주의와 전 자본주의의 상품 생산 과정을 구별 짓는 핵심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 1권의 내용을 보더라도 그가 착취와 축적이라는 동학을 핵심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옛 소련 사회도 일부 변형은 있었을지라도 마르크스가 말한 “일반화한 상품 생산” 사회의 핵심 특징이 구현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물론 옛 소련 사회에서는 상품들의 가격이 시장 경쟁을 통해 결정되지 않았고, 관료들의 지령에 의해 결정됐다. 그럼에도 옛 소련도 가치법칙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옛 소련은 서방 자본주의와 군사적·경제적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이 지배하던 사회였다. 이 때문에 소련의 지배계급은 끊임없이 서방 자본주의와 자신을 비교하며 강박적으로 축적 경쟁을 벌였다. 경쟁적 축적이라는 자본주의의 핵심 동학이 구현된 것이다. 스탈린의 말은 이를 잘 보여 준다.

산업화의 속도를 늦추는 것은 뒤지는 것을 뜻한다. 뒤지는 자는 패배한다. 우리는 선진국에 비해 50년이나 뒤져 있다. 우리는 10년 안에 이 격차를 메워야 한다. 우리가 그것을 하든지 아니면 패배하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14

이 때문에 옛 소련에서는 소비가 축적에 종속됐으며, 축적이 진행됨에 따라 이런 종속은 더욱 강화됐다. 산업 총산출량 중 소비재를 위해 투입되는 비율이 1928년에 67.2퍼센트였던 반면 1950년에는 31.2퍼센트 줄어든 상황이 이를 보여 준다. 반면 생산재를 위해 투입되는 비율은 1928년에 32.8퍼센트에서 1950년 68.8퍼센트로 늘었다. 이 때문에 수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고,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정도로 과학기술이 발전했던 소련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이처럼 경쟁적 축적이라는 동학이 옛 소련 사회를 지배했다. 이와 같은 사회는, 토니 클리프가 정의했듯, 국가자본주의 사회로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한 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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