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2호 2020년 1~2월호)

지난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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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적 군사 경제

최일붕 51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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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대다수는 제2차세계대전 종식 이후 미국 경제 번영의 직접적 토대는 전쟁 경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만약에 군비 축소와 진정한 평화가 양국 사이에 이루어진다면 경제적 ― 따라서 정치적 ― 문제들이 당연히 그리고 절망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소련이 타협적인 태도를 보이기만 해도 주식 시장의 매매에 즉각적인 변동이 발생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세계적인 규모의 협정이 타결될 것에 대한 두려움은 차치하고라도, 어떤 형태로든 하나의 협상이 타결된다는 두려움이 일면, 주식은 신경과민 상태가 되어 소위 평화 공포를 나타내게 된다. 실업률이 증가하고 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요구되면 보통, 정부 대변인들은 무엇보다도 전쟁 준비를 하느라고 현재 지출된 비용과 앞으로도 지출될 비용이 더욱 증가한다는 이유를 들어 자신들을 정당화한다. 1958년 1월 450만 명이 실업 상태에 처했을 때도 미국 대통령은 군수 계약 금액이 1957년에 356억 달러이던 것이 1958년에는 472억 달러로 증가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경제 상태와 전쟁 준비 간의 이러한 상관 관계는 모호하지 않으며, 은폐돼 있지도 않다. 이 관계는 공공연하게 그리고 정기적으로 보도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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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국주의는 이미 상당한 정도로 그 자체가 목표가 됐으며, 경제 정책은 그 수단이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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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세계대전으로 인한 경제 호경기가 ― 오직 그것만이 ― 미국을 1930년대의 불경기로부터 구해 냈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 재래식·비재래식 전쟁 물자가 그칠 새 없이 생산됐다. 그 결과는 우리가 두루 아는 바처럼 지난 10년에 걸쳐 위대한 미국의 번영을 가져왔다.1

케인스주의적 좌파

그러나 전후 좌파에게 장기 호황과 군비 증강 사이의 상관 관계는 분명하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개량주의자들인 케인스주의자들은 호황이 케인스주의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클리프의 비유를 빌면 “닭의 울음소리 때문에 해가 뜨는 것이라고 믿는 것과 같다”. 적자 재정에 의한 공공 지출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케인스의 조언을 따랐던 정부 자체가 없었다. 오히려 1960년대 초까지 각국 정부는 긴축 재정 정책을 추구했다. 대신에 각국 정부는 군비 증강에 박차를 가했다. 예컨대 1930년대 중엽에 겨우 36억 달러의 연평균 재정적자(1934년 36억 달러, 1935년 30억 달러, 1936년 43억 달러)를 발생시켰다 해서 루스벨트에게 매우 분개했던 미국 자본가들은 1941~1942년 590억 달러의 재정적자에는 괘념치 않았다.2 전쟁이 끝나던 해인 1945년의 군사비는 국민총생산GNP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3 1946~1967년도 간에 미국 정부는 예산 총액의 57.29퍼센트인 9,040억 달러를 군사력을 위해 사용했고 겨우 6.08퍼센트밖에 안 되는 960억 달러만을 교육·보건·노동·복지·주택·지역개발 등에 사용했다.4 또, 1966년에 항공기·미사일 산업은 연구 개발을 위해 54억 달러를 사용했고, 그 비용의 대부분을 연방 정부에서 받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건·교육·후생부는 그것의 4분의 1밖에 안 되는 비용만을 할당받았다.5

독일의 예를 들면, 1932~1937년에 민간 소비는 12억 달러밖에 증대하지 않은 반면 국민총생산은 107억 달러나 증대했는데, 새로운 생산은 대부분 무기와, 군비 산업들인 중공업에서 이루어졌다.6

정설파 트로츠키주의자들

호황의 존재를 인정한 사람들이 호황의 원인을 얼토당토않게 케인스 파 경제 정책으로 돌렸다면, 극좌파는 아예 호황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공산당의 스탈린주의자들과 정설파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전반적 위기’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현실을 직시하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스탈린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안타깝게도 트로츠키 자신이 1930년대 말에 자본주의의 파국을 점치고 있었다. 그래서 진정한 사회 개혁과 대중의 생활 수준 향상이 불가능해질 것으로 그는 예측했다.

하지만 전후 세계 자본주의는 붕괴하기는커녕 유례 없는 장기 호황을 누렸다. 이와 함께 개혁주의가 부활했다. 그래서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이 득세했다. 영국의 역대 노동당 정부들 가운데 1945~1951년 애틀리 정부가 가장 효과적인 개혁주의 정부였다. 애틀리 정부 하에서 노동 계급의 생활 수준은 크게 향상됐다. 완전 고용과 사회보장 제도가 존재했다. 이와 같은 사정은 서구 전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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