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3호 2020년 3~4월호)

지난 호

쟁점:지금의 이슈들

정의당의 그린 뉴딜 ― 기후 위기 극복과 자본주의를 조화시키려 하기

정선영 93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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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국가가 은행 예금에 대한 지급보증을 하고, 농산물 가격을 높이기 위해 정부 예산으로 농산물을 구매해 폐기 처분하는 것과 함께 대규모 토목공사 사업을 통해 230만 명의 청년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정책들이 추진됐다.

루즈벨트는 일자리를 주고 제한적인 임금 인상을 용인하며 노동계급의 불만을 달래려 했다. 그러나 그는 더 급진적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루즈벨트는 이윤 체제에 도움을 주는 선에서 자신의 개혁을 한정했다. 그는 국가를 통해 민간부문의 경기를 부양하려 했지만 시장경제를 규제하고 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이와 같은 정부 개입은 제한적인 효과만을 냈다. 경제 회복은 매우 더디게 진행됐다. 그나마 1937년이 돼서는 반짝 호황도 막을 내리고 “미국 역사상 가장 가파른 경기후퇴”가 나타났다. 결국 미국 경제가 산업생산과 고용률 등에서 대공황으로부터 완전히 회복한 것은 1941년 제2차세계대전에 뛰어들면서였다. 제2차세계대전 시기 국가가 경제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생산과 투자 등을 조직한 다음에야 대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은 경제를 살리는 데 효과가 없었다.

반면 루즈벨트가 추진했던 개혁 정책들이 노동자들의 투쟁을 고무한 측면은 있었다. 1930년대 중반 미국에서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의 점거 파업, 트럭 운전수들의 파업 등 대규모 노동자 투쟁들이 분출했다. 당시 노동자들은 강력한 공장 점거 투쟁을 통해 민주노조를 인정받고 임금 인상을 쟁취할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루즈벨트는 1936년 대선을 앞두고 친 노동자적 정책들을 발표했다.

그러나 루즈벨트는 당선한 후에는 경찰과 국토방위대를 투입해 노동자들의 파업을 파괴했다. 노동조합 관료들은 파업이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나 급진 좌파들의 영향을 받을까 봐 투쟁을 자제시키려 애썼고, 전투적 전술은 무시당했다. 결국 자신감을 회복한 사장들은 철강 산업에서 직장폐쇄라는 강수를 두며 노동자들의 투쟁을 가라앉혔다. 당시 1933년과 1934년에 파업을 선동하고 조직하는 데서 결정적 구실을 한 공산주의자들이 파시즘의 위협에 맞서 ‘진보적 부르주아’와 동맹해야 한다는 ‘국민전선’ 전략에 따라 민주당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전술로 돌아선 것은 큰 약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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