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5호 2020년 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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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논문

중국, 티베트, 좌파

찰리 호어 8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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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harlie Hore, China, Tibet and the left., International Socialism no.119호(June 2008).

이정구

2008년 초 티베트에서 벌어진 소요 사태와 항의 시위들은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한 1950년대 이래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올림픽 성화 봉송이 전 세계를 돌 때[2008년]에 항의 시위가 분출해, 티베트 민족주의의 잠재력을 보여 줬을 뿐 아니라 중국 지배에 대한 반대가 여전히 광범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하지만 전 세계 좌파들은 티베트 항의 시위 지지 여부를 두고 분열했는데, 일부는 중국의 티베트 지배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반면 다른 일부는 티베트 민족주의와 그 운동 지도부를 미국이 지원하는 것에 관해 중요한 문제들을 제기하기도 했다.

필자는 이 짧은 글에서 2008년 항의 운동을 개괄한 다음 1949년 이후 티베트의 역사를 간략하게 서술하고자 한다. 그런 다음 중국과 티베트에 대한 몇 가지 논쟁적인 주장들을 검토하고, 티베트가 오늘날 중국 사회에 대한 분석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살펴보며 글을 마무리할 것이다. 결정적으로 필자는 티베트인들의 항의 시위를 중국에서 벌어지는 일반적인 양상의 항의 시위와 같게 볼 수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여기에는 중국인 좌파와 전 세계 좌파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민족 억압이라는 특수한 문제가 있다.(무슬림이 다수인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시위

이번 항의 시위는 1959년 실패한 봉기(아래 참조)의 기념일인 2008년 3월 10일에 티베트자치구의 구도區都 라싸에서 시작됐다. 소수의 불교 승려들이 평화 시위를 벌이자 중무장한 경찰이 이를 진압했다. 더 많은 승려들이 대규모 연행에 항의하자 중국 공안은 처음에는 최루가스와 곤봉을 사용했고, 그다음에는 실탄을 사용했다.2 주말이 되자 시위대 수천 명이 경찰의 대규모 체포와 군대 투입에 항의해 돌을 던지며 싸웠고, 저항 세력들이 라싸의 일부 지역을 장악했다. 중국 정부는 19명이 죽었다고 발표했지만, 티베트 망명자들은 사망자 숫자가 80명이 넘는다고 했다.

티베트의 다른 지역에서도 항의 시위가 벌어졌는데, 흔히 “대티베트” 또는 “역사적 티베트”라 불리는 지역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중국 정부는 쓰촨성의 루훠炉霍현과 아바 티베트족 창족 자치구에서 발포와 시위대 살해가 있었음을 시인했다.3 영국 는 간쑤성 허쭈어合作시에서 기마 유목민들이 주도한 주요 소요들을 보도했으며,4 <가디언>은 웹사이트에 샤허夏河시에서 시위대 수천 명이 최루가스 공격을 받는 영상을 공개했다.5 ‘자유 티베트’ 운동은 4월 쓰촨성 까르제Kardze 지역에서 벌어진 대규모 발포를 비롯해 쓰촨성, 간쑤성, 칭하이성에서 벌어진 이와 비슷한 시위들을 상당수 보도했다.6

런던대학 경제학부의 티베트 전문가 한 명은 이렇게 지적했다. “시위 규모를 보나 시위 진압에 군대를 투입한 것을 보나 1950년대 이래로 전례 없는 사건이다.”7 1987년 10월과 1989년 3월에도 라싸에서 대규모 반란이 있었지만, 라싸 밖으로 확산되지는 않았다.8 항의 시위가 이번처럼 지리적으로 확산된 전례가 없었기에, 중국 지배자들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참가자들의 정확한 규모를 알기는 불가능하지만, 〈뉴욕 북 리뷰〉의 티베트 전문 기자 로버트 바넷은 이렇게 주장했다. “시위 참가자 중 대략 80퍼센트가 티베트 고원의 동쪽 지역 ─ 칭하이성, 쓰촨성, 간쑤성 ─ 출신인데, 중국은 이 지역을 티베트로 간주하지 않는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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