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6호 2020년 11~12월호)

지난 호

일반 논문

조국 자녀 입시 문제로 본 자본주의와 교육

정원석 전교조 조합원 162 36
351 1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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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경제 위기 이후 기업의 이윤율 위기, 정부의 재정 위기가 심화하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교육 긴축(또는 교육의 질에 대한 공격)이 벌어지고 이에 대한 세계 곳곳에서 저항이 벌어지고 있다.(그리스와 스페인, 남미 등) 영국과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도 교사들의 파업이 크게 벌어졌다.

한국의 대중 교육

한국 대중교육의 역사적 특징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교육기회 확대(초중등교육의 보편화와 고등교육의 대중화)와 교육의 계층화(특히, 고교서열화와 대학서열화), 신자유주의 교육개혁 등.

해방 후 한국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초등의무교육은 미군정기에 도입됐으나 한국전쟁 이후에 보편화했다. 정부는 1954년부터 ‘초등의무교육완성 6개년 계획’을 추진해 59년에는 95퍼센트 이상의 취학률을 달성했다. 초등교육 확대는 전쟁 이후 국민통합, 반공 이데올로기를 활용한 사회 통제, 교육을 통한 산업 인력 양성 등에 기여했다. 양적 팽창 전략에서 교육의 질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역에 따라 학급당 학생 수는 100명을 초과하기도 했다.

1960~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와 함께 중등교육도 급격히 확대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국가 주도 경제성장을 추진하면서 공업 생산에 필요한 저임금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중등교육을 대폭 확장했다. 1969년 중학교 무시험 전형(평준화 정책), 1974년에는 고등학교 입시 폐지(평준화)는 중등교육의 기회를 확대하는 정책들이었다. 그 결과 중학교 진학률이 1970년 36.6퍼센트에서 1980년 73.3퍼센트로, 같은 기간 고등학교 진학률은 20.3퍼센트에서 48.8퍼센트로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산업 인력 양성을 위해 실업계 교육을 강조했다. 그 결과 인문계와 실업계 고등학교의 비율은 1962년 5.4:4.6에서 1972년 4.2:5.8로 역전됐다. 한편 고등교육은 이공계 중심으로 투자하되 나머지 부문은 억제했다. 대입 예비고사 실시(1968), 대학학생정원령 제정(1969) 등은 고등교육 확대를 막는 역할을 했다. 대신 기술인력을 육성하기 위해 실업전문고등학교(이후 전문대학)를 신설했다. 실업교육 중심의 중등교육은 확대하고 인문계 중심의 고등교육은 억제하는 것은 저임금 기술 노동자를 양성하기 위한 국가적 전략의 반영이었다.47

한국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국제적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점점 더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진 노동자들이 필요해졌다. 이미 1970년대부터 대기업은 입사조건으로 4년제 대학 졸업(예정)자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1980년 ‘7.30 교육개혁’은 당시 산업의 필요를 반영한 것이었다. 중등교육을 인문계 중심으로 재편하고 고등교육을 확대했다. 공업계 고등학교의 신설을 억제하고 인문계 고등학교를 늘였다. 그 결과 고등학교 학생 중 실업계가 차지하는 비율이 1970년대 후반 45퍼센트에서 1989년 35.9퍼센트로 하락했다. 본고사와 예비고사 제도가 폐지되고, 대학정원의 30퍼센트를 추가로 모집할 수 있는 졸업정원제가 실시됐다. 이에 따라 대학진학률은 1970년대 10퍼센트대에서 1980년대 초반 30퍼센트대로 크게 늘었다.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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