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쟁점:현재의 이슈들

흑인 해방은 어떻게 가능한가 ― 미국 흑인 해방 운동을 중심으로

김준효 165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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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닷지는 크라이슬러 자동차의 주요 사업부다.

7 Marable 1993.

8 그러나 1992년 LA 소요는 흑인뿐 아니라 백인·라틴계도 참가한 다인종적·계급적 소요였음을 유념해야 한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이 소요를 “미국 최초의 현대적 다인종 반란”이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 역시 이 점에 관해 다루며 영국의 1981년 소요에 관한 고 크리스 하먼의 분석을 원용했는데, 하먼은 경찰의 인종차별을 계기로 점화됐던 현대 영국의 소요들이 사실상 모두 다인종적이었다고 지적하면서 그 요인으로 경제 위기와 실업이라는 공통의 경험을 꼽았다(Callinicos 1992; Harman 1981).

9 캘리니코스 1994, p145.

10 캘리니코스 1994, p145. 그러나 당시 미국 노동계급 내의 인종 간 분열은 노동조합 운동에도 반영됐다. 당시 산업 투쟁으로 급성장한 AFL 내 노동조합 관료층은 이 분단선을 기껏해야 묵인하고 더 나쁘게는 적극 부추겼다. 이 분열은 이후 AFL을 기반으로 사회당이 창당된 후에도, 그리고 1920년대 초 미국 노동운동이 결정적 패배를 겪을 때까지도 극복되지 못했다. 당시 사회당 안에서 인종과 출신을 뛰어넘는 계급 단결을 일관되게 추구한 것은 유진 뎁스 한 명뿐일 때도 있었다. IWW는 작업장 내 투쟁에서 노동자들이 인종을 뛰어넘어 단결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예외였지만, 작업장 바깥의 정치 운동에는 별다른 전략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 미국 남부에서 짐 크로 법에 맞선 투쟁이 벌어졌을 때나 북부에서 흑인 빈민들의 운동이 벌어졌을 때도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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