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쟁점:현재의 이슈들

흑인 해방은 어떻게 가능한가 ― 미국 흑인 해방 운동을 중심으로

김준효 165 34
353 9 7
8/18
프린트하기 전체 보기 PDF 보기

그러나 지배자들은 제도적 인종차별을 철폐할 생각이 없었다. 당시 존 F 케네디 정부는 대중적 반발을 피하려 잔혹한 탄압은 피하면서도, “운동이 비폭력이어야만 지지하겠다”며 단서를 달았다. 한편 민주당은 온건 지도부를 민주당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그러나 그런 어정쩡한 대응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온건파 지도부와 민주당의 거리는 좁혀졌지만, 운동의 압력은 미국 지배자들을 상당히 곤란하게 했다. 남부 흑인들의 투표권을 지키느라 냉전 경쟁에마저 지장을 받을 지경이 됐다. 결국 1964년에 흑인의 투표권을 법으로 보장할 수밖에 없었다. 운동은 하나의 목표를 성취했다.

같은 시기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 운동은 미국의 제국주의 전쟁에 도전하는 강력한 대중 운동으로 성장했다. 이들 운동에 영향 받아, 예컨대 성 소수자 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이 탄생했다.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때였다.

이 대목에서 평등권 운동은 본격적으로 분화했다. 일부가 보기에, 기존의 비폭력 방식은 남부 지배자들이 을러대는 “대반격”을 전혀 막지 못할 것 같았다. 투표권을 쟁취했으니 다른 차별도 철폐하라고 요구해야 한다고도 봤다. 반면 온건파는 투표권이 보장되고 흑인의 계급 상승을 막는 제도적 장벽들이 철폐되기만 하면 충분하다고 봤고, 더 큰 사회적 충돌이 벌어질까 겁에 질렸다.

킹 목사는 암살당하기 얼마 전까지 이 두 갈래의 분화를 중재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봤다. 반면 급진 흑인 투사 맬컴 엑스는 바로 이 시기에 운동의 전투적 부위와 공명하며 평등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닫기
x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