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쟁점:현재의 이슈들

기본소득 ― 복지국가의 21세기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장호종 11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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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자들은 기초생계급여나 실업수당의 액수가 너무 많아서 ‘근로 의욕’을 떨어뜨린다며 호시탐탐 삭감하려 해 왔다. 그런데 최저생계비가 ‘저질 일자리를 거부할’ 기본소득이라는 가정은 지배자들의 이런 불평을 인정하는 셈이다.

기본소득론자들은 노동연계복지(워크페어, 근로장려세제34)가 사실상 기업주들의 인건비를 지원하는 정책으로, 저임금 일자리를 유지 지원하는 구실을 한다고 비판해 왔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기본소득에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다. 임금노동 여부를 따지지 않으므로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기본소득론자들은 주장하지만, 최저생계비 수준의 소득만 지원하고 임금노동을 ‘강제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형식주의적인 논증일 뿐이다.

냉정하게 말해, 노동자들이 임금노동을 거부할 ‘자유’를 갖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가능하다. 노동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저질이든, 양질이든) 착취를 거부할 수 있게 허용했다가는 자본주의 체제는 작동을 멈출 것이다.(노동계급 전체가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총파업이겠지만 그것은 기존 국가를 강제로 해체시키기 위한 봉기 일보직전에 노동자 평의회를 기반으로 채택될 수 있는 전술일 것이다.)

노동거부가 공상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본소득의 효과를 과장되게 이해할 수 있고, 그 결과 매우 중요한 다른 것들(가령 고용안정, 임금 등 노동조건 방어, 기존 복지 방어 또는 개선 등)을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처럼 경제 침체가 장기화됨에 따라 만성적인 대량 실업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 자체가 적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본소득을 받더라도 잠시 버틸 수 있을 뿐이고 결국 일부는 실업을 피하기 위해 저질 일자리로 내몰릴 것이다. 투쟁을 통해 노동자에게 유리하도록 노동 조건에 대한 규제가 강화돼야 하는 이유다. 우파들의 비난과 달리 최저생계비의 3~4곱절이나 되는 실업급여조차 일자리를 거부할 만큼의 액수는 되지 못한다.

계급투쟁으로부터의 탈주

1970년대 후반 이래로 지배자들은 낮아지는 수익성을 회복하려고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쥐어짰다. 사용자들은 임금인상을 억제하고 노동강도를 높이는 등의 조처를 취했다. 주요국 정부는 그런 조처가 용이하도록 고용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사회보험에 사각지대가 늘어나고, 비정규직 등 저질 일자리가 늘어나고, 해고가 쉬워지는 등 노동자들의 처지가 악화했다. 이는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을 경쟁시켜 노동조건을 더한층 공격하기 쉽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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