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쟁점:현재의 이슈들

기후 위기, 자본주의, 그린뉴딜

정선영 93 34
355 1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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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리자는 집권 이후 유럽연합과 IMF와 유럽중앙은행의 긴축 압력에 굴복해 전력공사의 민영화를 그대로 추진했다. 재생에너지 산업도 유럽연합과 마찬가지로 친시장적 방식으로 추진했고, 그나마 경제 위기로 인해 재생에너지 산업의 성장 속도는 전보다 더 느려졌다. 심지어 시리자 정부는 2018년에 지중해 동부에서 새로 발견한 (화석연료인) 천연가스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스라엘 및 이집트의 독재 정권과 새로운 동맹을 맺기도 했다. 이를 통해 지중해 동부에서 그리스가 터키와 벌이고 있는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 했다. 시리자 정부는 자본주의 국가 간 경쟁 압력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했다.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정부도 비슷한 한계를 보여 줬다. 에보 모랄레스는 원주민 출신 대통령이고 환경운동가로서도 명성이 높았다. 그러나 모랄레스 정부는 천연자원에 대한 채취를 늘리며 환경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모랄레스 집권 하에서도 이윤을 위한 아마존 우림 파괴는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모랄레스는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일들은 좌파 정부들도 체제가 가하는 이윤 경쟁 압박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는 단지 좌파 지도자들의 능력이나 개인적 의지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적 성격과 구조 문제에서 비롯한다.

자본주의 국가는 누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바뀔 수 있는 계급 중립적인 기구가 아니다. 군대, 경찰, 검찰, 사법부, 거대한 관료기구 등 국가 기구가 운영되기 위한 재정도 결국 노동력 착취에서 나온다. 그래서 국가를 운영하는 권력자들도 노동계급에게서 더 많은 이윤을 뽑아내어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즉, 자본 축적)에 이해관계가 있다. 이 점은 세계체제 속에서 자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국가의 위상과 군사력은 경제력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혁주의 정치인들이 선거를 통해 집권하더라도 선출되지 않은 군대, 경찰, 고위 관료층 등 국가 기구의 권력자들과 기업의 자본가들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이윤 논리에 순응하라는 압력을 행사한다. 개혁주의 정당들은 이에 타협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볼리비아처럼) 우익 쿠데타로 쫓겨나는 일이 반복돼 왔다.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인 그리스 시리자가 결국 유럽연합·IMF·유럽중앙은행이 강요한 긴축 정책을 받아들인 것은 가장 최근 사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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