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쟁점:현재의 이슈들

1930년대의 대불황과 미국의 뉴딜

이정구 21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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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 하워드 진은 뉴딜정책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좌파적이라고 하는 것에서 파시즘적이라고 하는 것까지 극단적인 차이를 보인다는 점을 지적했다. 진은 루스벨트 행정부가 전체적인 계획이 없이 사태에 대응해 실험과 개선 노력을 했다는 점에서 실용주의적이라고 평가했다.43

1930년대 미국 사회가 직면한 심각한 위기와 이를 해결하려는 급진적인 운동들이 있었다. 노령자에게 연금 200달러를 매달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타운센트 운동, 코글린 신부의 사회정의 운동, 루이지애나 출신 상원의원 휴이 롱의 부 공유 제안 등이 그것들이다. 또한 팀스터(트럭 운전수 노동자)나 방직 노동자들의 거대한 파업 물결도 존재했다. 바로 이런 저항들 때문에 루스벨트는 와그너법 같은 개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30년대 대불황을 계기로 미국에서는 노동법이나 사회보장법 등 각종 사회 제도들이 도입됐는데, 이런 개혁 입법들이 시행될 수 있었던 동학은 대불황의 여파로 급진화된 대중의 투쟁과 저항 때문이었다.

하지만 계급협조주의를 선택했던 좌파의 우울한 결말도 존재한다. 193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노동운동에서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미국공산당은 1935년 스탈린의 인민전선 전략에 따라 지배계급 내 온건파에 대한 지지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 때문에 미국의 노동운동은 독립적인 사회 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루스벨트의 민주당에 파묻히고 말았다.44

1930년대 대불황과 뉴딜정책은 몇 가지 점에서 미국 자본주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첫째, 뉴딜정책은 미국 자본주의를 대불황에서 구출하지 못했다. 뉴딜정책이 약간 효과를 보는 듯하다가 1937∼1938년의 심각한 더블딥에 빠졌다. 미국 자본주의가 1929년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은 제2차세계대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던 1941년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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