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쟁점:현재의 이슈들

1930년대의 대불황과 미국의 뉴딜

이정구 21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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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미국에는 시중은행이 2만 4970개 있었다. 그러나 1933년에는 1만 4207개로 줄었다. 국채의 대부분을 갖고 있던 큰 은행들은 1929년 8707개에서 27.5퍼센트가 파산해 1933년에는 5606개로 줄었다. 후버는 농촌 지역 은행들이 파산하자 서둘러 재건금융공사를 설립했고, 긴급구제건설법을 재정해 주정부의 공공사업 활동을 보조했다.13 그러나 간접적이고 미약한 구제 정책으로는 급락하던 경제를 회복시키기는커녕 급락을 중단시킬 수조차 없었다.

1930년대의 대불황이 시작되면서 세계 2위의 공업국인 독일도 무사하지 못했다. 프랑크푸르트 보험사가 파산하고 1932년에는 오스트리아 최대은행인 크리스탈안슈탈트 은행이 파산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됐다. 세계 1위의 미국 경제도 마찬가지였는데, 1929년과 뒤이은 대불황이 금세 지나갈 일시적 위기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실업자가 1200만 명으로 증가해 실업률이 25퍼센트에 이르렀다. 이런 위기감 속에서 대통령에 취임한 루스벨트는 취임 직후 1주일 동안 강제로 은행들을 휴업시켜 예금 인출과 지불을 중단했고, 그제서야 은행 위기가 진정됐다. 이 은행 위기로 미국의 금융 체계가 사실상 붕괴했음이 드러났다.

대불황 발생 원인에 대한 주류 경제학의 설명

2008년 경제 위기 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지냈고 1930년대 대불황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벤 버냉키는 “대불황을 이해하는 일은 거시경제학의 성배를 찾는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을 에둘러 표현했다.14

대불황의 원인과 관련해서는 유효수요 부족을 원인으로 보는 피터 테민이나 크리스티나 로머 등 케인스주의자들, 통화공급의 부적절함을 원인으로 보는 밀톤 프리드먼 등 통화주의자들, 신용 위축으로 인한 디플레이션 문제를 제기하는 벤 버냉키, 국제 금융 체계의 불균형에서 원인을 찾는 베리 아이켄그린, 세계 헤게모니의 위기를 주요 원인으로 꼽는 찰스 킨들버거 등의 논의들이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분명한 이유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대표적 케인스주의자 피터 테민은 소비자 지출과 투자 지출의 하락, 1930년의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수출에 미친 악영향이 1930년대의 대불황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케인스주의자들은 대체로 유효수요 부족을 대공황의 원인으로 제시하는데, 유효수요 부족을 초래한 요인으로는 보호무역주의로 말미암은 미국 곡물 수출의 하락, 토지 가격 하락으로 말미암은 수요 부족, 주식시장과 자산 버블의 붕괴로 말미암은 실질 부의 감소, 빈부격차의 심화로 말미암은 소비 감소 등을 제기한다. 일부 케인스주의자들은 주택과 자동차 등 내구소비재 시장의 포화 상태로 인한 ‘자본 한계효율성의 갑작스런 붕괴’도 한 요인으로 지적하지만, 여러 다양한 요소들 중 하나로 취급한다. 하지만 케인스주의자들은 유효수요가 왜 줄어들거나 사라졌는지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핵심을 놓치고 있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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