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쟁점:현재의 이슈들

1930년대의 대불황과 미국의 뉴딜

이정구 21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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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 루스벨트는 1938년 국가모기지기관인 패니메을 설립해 노동자들이 주택을 쉽게 소유할 수 있게 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패니메는 주택 모기지의 유통시장을 창출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이로 인해 노동자 대중의 일상적 삶이 금융 체계에 긴밀히 결합됐다.

케인스를 포함한 많은 학자들은 1930년대의 뉴딜정책이 금융자본을 억압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소수 금융과두제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제거하고 금융 체계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물론, 주택 소유를 통해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한다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 대중의 소득 중 일부가 패니메 같은 금융기관에 긴밀히 연결됐다.

후버의 재임 마지막 해인 1932년의 회계연도에는 세입이 세출의 반도 되지 못했다. 사실 대불황 기간 내내 균형예산을 달성한 적이 없었으므로 후버는 불가능한 목표를 추구했던 셈이다. 경제 위기에 대처하려면 균형예산이 아니라 재정 지출 확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1936년에 들어서야 비로소 다수 사람들의 지지를 받게 됐다.

루스벨트는 취임 직후 부의 집중을 완화하고 소득분배 불균형을 해소하고 대중의 구매력을 높이려는 정책을 추진했다. 뉴딜정책의 입안자 중 한 명인 몰턴은 전형적인 과소소비론자였다. “소득분배에 대한 연구의 결과로 생산과 소비가 잘 조화되지 않는 현상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 이와 같은 정세의 원인은 총소득 중 저축으로 흘러가는 비율의 증가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우리의 총생산 능력을 흡수하기에 충분한 시장 수요를 발견하지 못한 만성적 현상에 처한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29

1920년대의 번영기에도 저소득층은 항상 빈곤 상태에 있었다. 1927년에도 평균임금은 113달러에 지나지 않았고, 4인 가구의 연소득은 1000달러 미만이었다. 그런데 당시에 최소한의 건강을 유지하려면 1750~2000달러가 필요했다. 즉, 미국 전체 가정의 3분의 2 이상은 기초적인 물질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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